9월08일(녹) 연중 제23주일
Twenty-third Sunday in Ordinary Time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오늘은 연중 제23주일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의 주제는 선택입니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할 때에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진정 바른 선택을 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매순간 주님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가장 탁월한 선택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제1독서는 지혜서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확실하지 않고 인간의 의도는 변덕스럽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일을 짐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주님의 뜻을 찾고 헤아리기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참 지혜를 받아야만 주님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성령을 받아야만 주님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지혜는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의 길을 바르게 만들어 주고, 진정 주님의 참 지혜는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깨닫게 해 줍니다. 주님의 지혜는 바른 삶을 살게 하고 바른 길을 가게 해서 결국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진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2독서는 필레몬서입니다. 오네시모는 필레몬의 노예입니다. 오네시모는 필레몬의 집에서 도망 나와 바오로 사도가 있는 곳까지 찾아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고 결국 오네시모는 세례를 받습니다. 필레몬의 노예인 오네시모는 얼마 동안 옥중에서 바오로 사도의 시중을 듭니다. 그 후에 바오로 사도는 노예 오네시모를 주인 필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편지를 씁니다. 편지의 내용은 노예로서 지은 죄를 용서하고 주님 안에서 신앙의 형제로 오네시모를 받아들일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사연입니다. 필레몬과 오네시모는 더 이상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아닌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입니다. 필레몬은 오네시모를 주님 안에서 형제로 선택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자기 자신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적극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망대를 세우려면 미리 경비를 계산하고 전쟁을 하려면 미리 승산을 따집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끝까지 따를 수 있을는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주님을 따르는데 장애되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가장 탁월한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 지혜서 9,13-18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해설) 구약 성경 중 마지막으로 씌여진 지혜서는 주전 50년경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어로 집필됩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이 헬레니즘 문화와 사상으로 이스라엘 신앙에 큰 위협을 받자 유다교의 정통 신앙을 고수하기 위해 집필합니다. 주님 안에 머무는 사람, 성령 안에 사는 사람만이 지혜로운 삶을 살 것임을 강조합니다.
13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14 죽어야 할 인간의 생각은 보잘것없고, 저희의 속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15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이 천막이 시름겨운 정신을 짓누릅니다. 16 저희는 세상 것도 거의 짐작하지 못하고, 손에 닿는 것조차 거의 찾아내지 못하는데, 하늘의 것을 밝혀낸 자 어디 있겠습니까? 17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18 그러나 그렇게 해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 1st Reading, Wisdom 9:13-18
13 'What human being indeed can know the intentions of God? And who can comprehend the will of the Lord? 14 For the reasoning of mortals is inadequate, our attitudes of mind unstable; 15 for a perishable body presses down the soul, and this tent of clay weighs down the mind with its many cares. 16 It is hard enough for us to work out what is on earth, laborious to know what lies within our reach; who, then, can discover what is in the heavens? 17 And who could ever have known your will, had you not given Wisdom and sent your holy Spirit from above? 18 Thus have the paths of those on earth been straightened and people have been taught what pleases you, and have been saved, by Wisdom.'
+ 필레몬서 9ㄴ-10.12-17 <이제 그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으십시오.>
해설) 필레몬의 노예인 오네시모는 바오로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믿게 되고, 얼마 동안 옥중에서 바오로의 시중을 듭니다. 그 후 바오로는 오네시모를 필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이 편지를 전하게 합니다. 그 내용은 노예로서 주인에게 죄를 지은 그를 용서하고 신앙의 형제로 대하며 너그럽게 받아들일 것을 부탁하는 사연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9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10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12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13 그를 내 곁에 두어, 복음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대 대신에 나를 시중들게 할 생각도 있었지만, 14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15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6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면, 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보나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17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 2nd Reading, Philemon 1:9-10, 12-17
9 I am rather appealing to your love, being what I am, Paul, an old man, and now also a prisoner of Christ Jesus. 10 I am appealing to you for a child of mine, whose father I became while wearing these chains: I mean Onesimus. 12 I am sending him back to you -- that is to say, sending you my own heart. 13 I should have liked to keep him with me; he could have been a substitute for you, to help me while I am in the chains that the gospel has brought me. 14 However, I did not want to do anything without your consent; it would have been forcing your act of kindness, which should be spontaneous. 15 I suppose you have been deprived of Onesimus for a time, merely so that you could have him back for ever, 16 no longer as a slave, but something much better than a slave, a dear brother; especially dear to me, but how much more to you, both on the natural plane and in the Lord. 17 So if you grant me any fellowship with yourself, welcome him as you would me;
+ 루카 14,25-33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해설) 예수님께서는 혈연관계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소중히 여기십니다. 망대를 세우려면 미리 경비를 계산하고 전쟁을 하려면 미리 승산을 따져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려면 끝까지 따를 수 있을는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는 무소유가 선결조건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중심적 자아를 버리고 따라야 합니다.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Holy Gospel of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Luke 14:25-33
25 Great crowds accompanied him on his way and he turned and spoke to them. 26 'Anyone who comes to me without hating father, mother, wife, children, brothers, sisters, yes and his own life too, cannot be my disciple. 27 No one who does not carry his cross and come after me can be my disciple. 28 'And indeed, which of you here, intending to build a tower, would not first sit down and work out the cost to see if he had enough to complete it? 29 Otherwise, if he laid the foundation and then found himself unable to finish the work, anyone who saw it would start making fun of him and saying, 30 "Here is someone who started to build and was unable to finish." 31 Or again, what king marching to war against another king would not first sit down and consider whether with ten thousand men he could stand up to the other who was advancing against him with twenty thousand? 32 If not, then while the other king was still a long way off, he would send envoys to sue for peace. 33 So in the same way, none of you can be my disciple without giving up all that he owns.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이익이 되는 곳으로 방향을 정합니다. 세상일을 짐작하고 결정하고 선택하기도 어려운데 주님의 생각을 사람의 머리로는 더욱 알 수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만이 바른 목표를 갖고 바른 선택을 할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우리는 매순간 주님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9년 09월 08일 일요일서울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02-3789-5425 010-8889-5425
월성 : 매주 월요일 오후 1-4시, 7-9시, 가톨릭회관 3층 대강의실
화성 : 매주 화요일 오전 10-12시, 성산2동 성당 요한강당
IU - Story of old couple, 아이유 -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버림과 따름
+ 루카 14,25-33
1. 예수님의 참 제자로 살기위해 어떤 노력을 하며 삽니까? 나는 삶 전체를 봉헌하기 두려워 일정 부분만을 내어 놓은 채 결과를 관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십자가 뒤에 받을 영광보다 당장 다가올 현실의 어려움이 두려워 십자가 지는 것을 망설이지는 않습니까? 무엇이 두려워 주저하고 있습니까?
2. 내가 오늘 짊어져야하는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나를 좌절시키기 위해 이 십자가를 주신 것이 아니라 이 십자가를 통해 내가 더 영적으로 강해지고 정화되어 예수님께로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까?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는 예수님의 말씀은 나에게 어떤 도전을 주고 있습니까?
Today's Reflections:
Sunday 8th, The Twenty-third Sunday in Ordinary Time
First Reading : Wisdom 9:13-18
Second Reading : Philemon 9-10, 12-17
Holy Gospel : Luke 14:25-33
Cost of Discipleship
The first reading from the Old Testament reminds us that without the Wisdom of God it is impossible for us to know what the Lord’s intentions for us are because ‘the reasonings of mortals are unsure and our intentions unstable’. Humans struggle to understand the ways of the world and so they fail all the more to fully understand the Wisdom of God. However, the Wisdom of God has been sent into the world through the Holy Spirit to help us in our discernment and the living out of the faith. We know that the Wisdom of God is Jesus Christ who died for us so that we might enter the heavenly Kingdom.
In the gospel passage from St Luke, the passage concludes with Jesus telling the people that they must give up all they possess if they are to be his disciples. The Lord was on the way to Jerusalem and as he neared the city the crowd grew larger. In the first part of the text, Jesus tells the people that they must hate father and mother if they are to be worthy of him. It is quite a striking statement but the Lord is not asking the people to actually hate their father and mother, but to see them as being secondary to faith in Jesus. The Lord must come first in all things if the people are to enter the Kingdom. The second part of the text contains two parables in which Jesus exhorts the people to consider the cost of faith in him before they decide to follow him. Being a disciple is a good and positive thing, but it requires a commitment which is lifelong and can never be relinquished. Jesus is suggesting that it is better to not become his disciple at all rather than become his disciple and then fall away when trials or some other enticement comes along. The text is not simply a command to get rid of everything we own: the Lord is reminding us that being a Christian demands a total commitment to him and so we must overcome all attachment to our possessions and to those people who are dearest to us for the sake of the Kingdom.
In our second reading from St Paul’s brief letter to Philemon, we read that Paul is sending back to Philemon, Onesimus, a slave who had run away from his master. In sending him back, Paul is complying with the law but he is also doing so in the hope that Onesimus will be treated as a free man, as his master is a Christian and Onesimus returns as a Christian convert. While Onesimus is still Philemon’s slave under the law, Paul exhorts him to treat Onesimus as a brother – which is the Christian way – because ‘there can be neither Jew nor Greek, slave nor freeman’, which is a constant theme in Paul’s letters. This is the spirit which we too must have and we must place our complete trust in God rather than in the things and people of this life. Only then will we inherit eternal life.
Prayer :
"Lord, may your love consume me and transform my life that I may truly desire nothing more than life with you. Help me to count the cost and to joyfully embrace the cross for your sake." -Amen
성 세르지오 1세(Saint Sergius I)
축 일 : 9월 8일
신 분 : 교황
활동지역 :
활동년도 : +701년
같은 이름: 세르기예프, 세르기오, 세르기우스, 세르지우스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 살던 어느 상인의 아들인 성 세르기우스(또는 세르지오)는 이탈리아 시칠리아(Sicilia)의 팔레르모(Palermo)에서 태어났고, 로마에서 교육을 받은 후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687년 12월 15일에 교황 코논(Conon)을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의 교황 선출에는 잡음이 많았고, 또 그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교황의 동의도 없이 692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궁전의 커다란 원형 거실(trullus)에서 개최하여 트룰라눔(Trullanum) 공의회로도 회의의 칙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황제와 위험스런 논쟁에 말려들었다. 만일 성 세르기우스 교황이 이 칙서를 인정하게 되면 콘스탄티노플이 로마와 대등한 교회 구조상의 위치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황제는 친위대 장군인 자카리아스(Zacharias)를 로마로 파견하여 교황을 체포해 오도록 하였으나, 로마 시민들이 단결하여 이를 저지하고 자카리아스를 축출하였다. 이 사건은 황제가 죽는 날까지 계속되었다.689년 성 세르기우스는 성토요일에 로마로 성지순례를 온 웨식스(Wessex)의 왕인 성 카이드발라(Caedwalla, 4월 20일)에게 세례를 주었고, 695년에는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 11월 7일)를 프리지아(Frisia)의 대주교로 서임하여 영국 선교와 독일 그리고 프리슬란트(Friesland)에서의 선교활동을 격려하였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성 세르기우스 교황은 직접 로마에 있던 음악학교(스콜라 칸토룸)를 다니면서 전례 음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미사 중에 '하느님의 어린 양'(아뉴스 데이, Agnus Dei) 노래를 도입했다. 또 십자가 현양 축일을 처음 도입한 교황으로도 알려진 그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다.
출처 : 가톨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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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_2019년 9월08일(녹) 연중 제2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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