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월 01일(녹) 연중 제22주일
Twenty-Second Sunday in Ordinary Time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오늘은 연중 제22주일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의 주제는 가난과 겸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선을 베풀 때와 기도할 때 그리고 단식할 때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숨은 일도 보시는 주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보십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위대한 일들을 드러내십니다.
제1독서는 집회서입니다.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따릅니다. 하느님의 참된 자녀들은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처리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인정하시고 축복하시고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의 참 자녀는 훌륭하게 될수록 더욱 더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의 많은 은총을 받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높은 사람도 많고 귀한 사람도 많지만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위대한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좋아하십니다.
제2독서는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옛 이스라엘 사람들이 계약을 맺었던 시나이 산은 손으로 만져볼 수 있고 불이 타오르고 검은 구름과 암흑에 싸인 채 폭풍이 일고 나팔 소리가 울리고 굉장한 음성이 들려오는 산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계약의 산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입니다. 새로운 계약의 천상 예루살렘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고,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교회가 있고,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느님이 계시고, 완전히 올바른 사람들의 영혼이 있습니다. 시나이 산의 옛 계약은 두려움의 계약이었지만 천상 예루살렘의 새 계약은 평화와 신뢰가 가득 찬 새 계약입니다. 천상 예루살렘에는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높은 자리, 윗자리, 위대한 자리, 큰 자리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높은 자리에 앉는다고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윗자리에 앉는다고 윗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자리가 그 사람을 높이지는 않습니다. 위대한 자리가 그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입니다. 위대한 자리가 아니라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큰 자리가 아니라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을 주님께서는 높은 사람과 위대한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입니다.
+ 집회서 3, 17-18.20.28-29 <너를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해설) 참 그리스도인은 훌륭하게 될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주님의 은총을 받습니다. 세상에는 높고 귀한 사람이 많지만 주님께서는 당신의 오묘함을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에게만 드러내 보이십니다. 주님의 능력은 위대하시며 주님께서는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좋아하십니다.
1 7 얘야, 네 일을 온유하게 처리하여라. 그러면 선물하는 사람보다 네가 더 사랑을 받으리라. 18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20 정녕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28 거만한 자의 재난에는 약이 없으니, 악의 잡초가 그 안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29 현명한 마음은 격언을 되새긴다. 주의 깊은 귀는 지혜로운 이가 바라는 것이다.
+ First Reading, Ecclesiasticus 3:17-18, 20, 28-29
17 My child, be gentle in carrying out your business, and you will be better loved than a lavish giver. 18 The greater you are, the more humbly you should behave, and then you will find favor with the Lord; 20 for great though the power of the Lord is, he accepts the homage of the humble. 28 For the disease of the proud there is no cure, since an evil growth has taken root there. 29 The heart of the sensible will reflect on parables, an attentive ear is the sage's dream.
+ 히브리서 12, 18-19.22-24ㄱ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입니다.>
(해설) 참 그리스도인이 와 있는 곳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고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교회가 있고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느님이 계시고 완전히 올바른 사람들의 영혼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 계약의 중재자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아벨의 피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속죄의 피가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18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만져 볼 수 있고 불이 타오르고 짙은 어둠과 폭풍이 일며 19 또 나팔이 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 말소리를 들은 이들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말씀이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 Second Reading, Hebrews 12:18-19, 22-24
18 What you have come to is nothing known to the senses: not a blazing fire, or gloom or total darkness, or a storm; 19 or trumpet-blast or the sound of a voice speaking which made everyone that heard it beg that no more should be said to them. 22 But what you have come to is Mount Zion and the city of the living God, the heavenly Jerusalem where the millions of angels have gathered for the festival, 23 with the whole Church of first-born sons, enrolled as citizens of heaven. You have come to God himself, the supreme Judge, and to the spirits of the upright who have been made perfect; 24 and to Jesus, the mediator of a new covenant, and to purifying blood which pleads more insistently than Abel's.
+ 루카 14, 1.7-14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해설) 바리사이들은 회당에서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윗자리에 앉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식사의 윗자리에 앉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하늘의 식탁에서도 윗자리에 앉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야말로 높여질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 Holy Gospel of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Luke 14:1, 7-14
1 Now it happened that on a Sabbath day he had gone to share a meal in the house of one of the leading Pharisees; and they watched him closely. 7 He then told the guests a parable, because he had noticed how they picked the places of honor. He said this, 8 'When someone invites you to a wedding feast, do not take your seat in the place of honor. A more distinguished person than you may have been invited, 9 and the person who invited you both may come and say, "Give up your place to this man." And then, to your embarrassment, you will have to go and take the lowest place. 10 No; when you are a guest, make your way to the lowest place and sit there, so that, when your host comes, he may say, "My friend, move up higher." Then, everyone with you at the table will see you honored. 11 For everyone who raises himself up will be humbled, and the one who humbles himself will be raised up.' 12 Then he said to his host, 'When you give a lunch or a dinner, do not invite your friends or your brothers or your relations or rich neighbors, in case they invite you back and so repay you. 13 No; when you have a party, invite the poor, the crippled, the lame, the blind; 14 then you will be blessed, for they have no means to repay you and so you will be repaid when the upright rise again.'
학벌이나 재력이나 명예나 무엇이든지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며 드러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보다는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속을 보십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충실한 삶을 살 때 주님께서 우리를 높이실 것이며 빛나게 하실 것입니다.
2019년 09월 01일 일요일
서울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02-3789-5425 010-8889-5425
월성 : 매주 월요일 오후 1-4시, 가톨릭회관 3층 대강의실, 오후 7-9시 205호
화성 : 매주 화요일 오전 10-12시, 성산2동 성당 요한강당
https://youtu
.be/0KB8yY_hs60
Helplessly Hoping - Suddenly Years Align (SYA)
끝자리에 앉아라 /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
+ 루카 14,1. 7-14
1. 나는 어떤 자리에 앉고 싶어 합니까? 남들이 우러러 보는 자리입니까? 아니면 제일 뒤쪽에 있는 평범한 자리입니까? 남들이 나를 알아보고 대우해주길 바라거나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겸손한 자세로 살고 있습니까? 내가 더 낮아지려고 노력할 때 내 마음속에 행복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까?
2. 나보다 힘없고, 어리고, 배우지 못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나는 그들을 나보다 못하다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말로 상처 주는 등, 함부로 대한적은 없었습니까? 내가 이승의 삶을 끝내고 본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 그들 곁에 서있던 수호천사들이 나에 대해서 하느님께 어떻게 말씀드릴지 상상해보았습니까?
Today's Reflections:
Sunday 1st, The Twenty-Second Sunday in Ordinary Time
First Reading : Ecclesiasticus 3:17-20, 28-29 Second reading : Hebrews 12:18-19, 22-24 Holy Gospel : Luke 14:1, 7-14
Seeking place of honor
The Old Testament reading today from the Book of Ecclesiasticus warns the reader to be a humble person. Humility is far better than pride and the humble are loved more than a generous giver because many people will take from a philanthropist without thinking too much about him, so long as they can get what they can. Humility has great place in God’s eyes and the sensible will consider the Lord’s teachings. The Psalm reminds us that the Lord is the one who protects and provides a home for the widow and orphan and those who are powerless.
The theme of humility is taken up in the gospel passage from St Luke where Jesus is the guest of a Pharisee. It was quite common for people to invite their friends to meals and banquets and for the invite to be reciprocated. A key reason for doing this was that if the host should ever fall on hard times, they could rely on their friends to help them out of their difficulty, and so the meals were a way of courting friendship. However, Jesus tells the people that those who give parties for the poor and the destitute are the truly generous ones for they are giving to people who cannot give to them in return, who cannot help them should they fall into need. By giving to those who can give to them they do nothing but fool themselves into false humility because the key to humility is to rely on God alone and to place all of one’s trust in him, for he is the one whose praise has true meaning and he is the only one who can raise us up. The reading warns us about our own ego and about how we treat others. The Lord knows the inmost heart and he knows whether or not we are truly humble.
In our final excerpt from the letter to the Hebrews, the author reminds the Hebrews that they have come to the living God with whom everyone is regarded as a first-born son and therefore a citizen of heaven –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male and female, or on the basis of language or nationality, but all are equal. As citizens of heaven, then, we should act like we truly believe and so show the way for others that they too may become citizens.
Prayer :
"Lord Jesus, you became a servant for my sake to set me free from the tyranny of selfishness, fear, and conceit. Help me to be humble as you are humble and to love freely and graciously all whom you call me to serve." - Amen
복자 가브라 미카엘 (Blessed Gabra Michael)
축 일 : 09월 01일
신 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에티오피아(Ethiopia)
활동년도 : +1855년
같은이름 : 게브레, 마이클, 미가엘, 미겔, 미구엘, 미키
1790년경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난 가브라 미카엘은 로마 가톨릭교회에 속하지 않은 에티오피아 교회의 수도원장으로 높은 성덕과 학덕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1839년 빈첸시오회의 에티오피아 선교단의 일원으로 에티오피아에 도착한 성 유스티누스 데 야코비스(Justinus de Jacobis, 7월 31일) 신부는 그를 만났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에티오피아 교회의 대표로 교황을 알현하러 로마에 가자고 초대하였다. 로마 방문 중에 큰 감명을 받은 그는 1844년 50이 넘은 나이에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 후 그는 성 유스티누스 데 야코비스 신부를 도와 에티오피아인들을 교육하여 방인사제를 양성하는 것을 비롯하여 그들의 필요에 맞는 교리서를 저술하였다. 또 각종 신학서적들을 번역하고 대학도 설립하였다. 그러나 가브라 미카엘을 임명했던 에티오피아 교회의 수장 아부나 살라마(Abuna Salama)의 주장으로 그들은 추방형을 받고 마사와(Massawa) 섬으로 쫓겨났다.
이곳에서 성 유스티누스 데 야코비스 신부는 주교로 서품되었고, 비밀리에 에티오피아로 들어와서 그의 첫 번째 주교 직무 수행으로 1851년 가브라 미카엘을 사제로 서품하였다. 그들은 함께 활동하며 자신들을 쫓아냈던 에티오피아 교회 사람들까지도 개종시키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를 본 국왕은 가브라 미카엘과 4명의 동료들을 체포하여 고문하고 사형 언도를 내렸다. 다행히 영국 영사의 중재로 목숨은 건졌으나 국왕의 명령으로 쇠사슬에 묶인 채 다른 감옥으로 옮겨야 했다. 콜레라에 걸렸다 겨우 회복된 그는 소량의 음식마저도 다른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나누었고, 그를 감시하던 간수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 1855년 8월 28일, 마침내 그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걷지 못하고 길가에 쓰러져 생을 마감하였다. 간수는 정중하게 쇠사슬을 제거하고 그의 시신을 매장하였다. 그는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순교자로서 복자품에 올랐다. 그는 게브레 미카엘(Ghebre Michael)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홈
매일미사가 필요하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에서 파일을 다운로드 후 사용하세요.
매일미사_2019년 9월01일(녹) 연중 제22주일
Comenta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