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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8월 18일


08월 18일(녹) 연중 제20주일

Sunday of Twentieth Week of Ordinary Time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오늘은 연중 제20주일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의 주제는 믿음입니다. 모든 예언자들이 그러했듯이 예레미야도 고난의 길을 가면서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그 말씀을 전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이 지치거나 낙담하는 일이 있더라도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오직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예레미야서입니다. 예레미야는 주전 627년부터 사십년간 에루살렘에서 예언한 예언자입니다. 예레미야 당시 남 유다 왕국은 종교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타락했고 하느님의 징벌의 대상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않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바빌론에게 점령당할 것이라고 그는 예언합니다. 백성의 원로들은 예레미야 예언자를 붙잡아 웅덩이에 가둡니다. 유다의 입장에서 볼 때 예레미야는 반역자이며 괘씸한 인물이며 나라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반국가적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합리화된 여론은 예언자를 고발하고 예레미야는 동족으로부터 미움 받는 표적이 됩니다. 그래도 예레미야는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제2독서는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른 땅을 지나가듯이 홍해를 건넙니다. 이집트 사람들도 그렇게 건너려고 했으나 모두 물에 빠져 죽고 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음으로 예리고 성을 이레 동안 돌자 예리고 성은 무너지고 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며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맹렬한 불을 끄고 칼날을 피하고 약하지만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칩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도 굳건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많은 고난을 참아 내신 예수님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치거나 낙담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과 평화를 주러 오십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고 우리를 분열시키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은 정화와 심판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불은 종말에 이루어질 하느님의 나라의 상징입니다. 이 불은 하느님 나라 선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러 오셨고,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기를 희망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따를 때 부모와 형제와 자녀들 간에도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비록 마찰과 분열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참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며 주님을 따르는 참 제자의 길입니다.

 



+ 예레미야 38,4-6. 8-10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예레 15,10).>

해설) 주전 605년에 바빌론이 등장하고 예레미야의 예언이 현실로 드러납니다. 예언자가 선포한 주님의 말씀은 갇혀 있을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침묵을 지키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은 바빌론 군대에게 넘어가 점령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대신들은 예레미야를 진흙구덩이에 넣어버립니다.



그 무렵 4 대신들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예레미야는 마땅히 사형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이따위 말을 하여, 도성에 남은 군인들과 온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자는 이 백성의 안녕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을 구하고 있습니다.” 5 이에 치드키야 임금은 “자, 그의 목숨이 그대들의 손에 달려 있소. 이 임금은 그대들의 말에 어찌할 수가 없구려.” 하고 말하였다. 6 그들은 예레미야를 붙잡아 경비대 울안에 있는 말키야 왕자의 저수 동굴에 집어넣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밧줄로 묶어 저수 동굴에 내려 보냈는데, 그곳에는 물은 없고 진흙만 있어서 그는 진흙 속에 빠졌다. 8 에벳 멜렉은 왕궁에서 나와 임금에게 가서 말하였다. 9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저 사람들이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한 일은 모두 악한 짓입니다. 그들이 그를 저수 동굴에 던져 넣었으니, 그는 거기에서 굶어 죽을 것입니다. 이제 도성에는 더 이상 빵이 없습니다.” 10 그러자 임금이 에티오피아 사람 에벳 멜렉에게 명령하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서른 명을 데리고 가서, 예레미야 예언자가 죽기 전에 그를 저수 동굴에서 꺼내어라.”



+ First Reading, Jeremiah 38:4-6, 8-10

4 The chief men then said to the king, 'You must have this man put to death: he is unquestionably disheartening the remaining soldiers in the city, and all the people too, by talking like this. This man is seeking not the welfare of the people but their ruin.' 5 King Zedekiah answered, 'He is in your hands as you know, for the king is powerless to oppose you.' 6 So they took Jeremiah and put him into the storage-well of the king's son Malchiah in the Court of the Guard, letting him down with ropes. There was no water in the storage-well, only mud, and into the mud Jeremiah sank. 8 Ebed-Melech came out from the palace and spoke to the king. 9 'My lord king,' he said, 'these men have done a wicked thing by treating the prophet Jeremiah like this: they have thrown him into the storage-well. He will starve to death there, since there is no more food in the city.' 10 At this the king gave Ebed-Melech the Cushite the following order: 'Take thirty men with you from here and pull the prophet Jeremiah out of the storage-well before he dies.'






+ 히브리서 12, 1-4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해설) 참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누릴 기쁨을 생각하며 부끄러움도 상관하지 않고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고통을 받으시지만 지금은 부활하여 하느님의 옥좌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1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2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3 죄인들의 그러한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4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 Second Reading, Hebrews 12:1-4

1 With so many witnesses in a great cloud all around us, we too, then, should throw off everything that weighs us down and the sin that clings so closely, and with perseverance keep running in the race which lies ahead of us. 2 Let us keep our eyes fixed on Jesus, who leads us in our faith and brings it to perfection: for the sake of the joy which lay ahead of him, he endured the cross, disregarding the shame of it, and has taken his seat at the right of God's throne. 3 Think of the way he persevered against such opposition from sinners and then you will not lose heart and come to grief. 4 In the fight against sin, you have not yet had to keep fighting to the point of bloodshed.


+ 루카 12, 49-53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해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 선포를 불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러 오셨고, 그 선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기를 희망하십니다.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크게는 우주에 이르기까지 크나큰 붕괴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가정의 분열은 종말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 Holy Gospel of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Luke 12:49-53

49 'I have come to bring fire to the earth, and how I wish it were blazing already! 50 There is a baptism I must still receive, and what constraint I am under until it is completed! 51 'Do you suppose that I am here to bring peace on earth? No, I tell you, but rather division. 52 For from now on, a household of five will be divided: three against two and two against three; 53 father opposed to son, son to father, mother to daughter, daughter to mother, mother-in-law to daughter-in-law, daughter-in-law to mother-in-law.





뜨거운 용광로의 불 속에 광석을 녹여야만 그 중에서 금이나 은이나 원하는 순수한 금속을 정련해 낼 수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는 미지근한 마음으로는 이 세상에 주님의 나라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주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세상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뜨겁게 녹여야 합니다. 정의와 진리는 오직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2019년 08월 18일 일요일

서울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02-3789-5425 010-8889-5425


월성 : 매주 월요일 오후 1-4시, 가톨릭회관 3층 대강의실, 오후 7-9시 205호

화성 : 매주 화요일 오전 10-12시, 성산2동 성당 요한강당

 

https://youtu

.be/0KB8yY_hs60

Hard To Say I'm Sorry - Chicago Cover by Jason Derlatka



불을 지르고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 12, 49-53



1. 성령의 불로 세상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시려고 오셨지만 성령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세상 사람들 때문에 가슴아파하시는 예수님을 상상해 보십시오. 왜 사람들은 진리를 거부합니까? 왜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 살며 그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반대와 저항에 부딪칩니까?


2. 사랑과 진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혼란을 가져오는 것 같습니까? 말씀 안에 살려하고 그 말씀을 전하려하면 할수록 어떤 불편함이나 방해를 체험한 적이 있습니까? 나는 하느님의 뜻과 역행하는 온갖 불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며 믿음 때문에 겪게 되는 모든 불편함과 반대에 어떻게 맞서고 있습니까?

 

Today's Reflections:


Sunday 18, The Twentieth Sunday in Ordinary Time


First Reading : Jeremiah 38:4-6, 8-10 Second reading : Hebrews 12:1-4 Holy Gospel : Luke 12:49-53


Fire and division!


In the first reading we read of the attempted murder of the prophet Jeremiah by some of the king’s men. Jeremiah was a rather despised prophet among many of the courtiers because the word he spoke was rarely positive or to their liking. At the time in question, Jerusalem was under siege and Jeremiah had prophesied that it would fall to the Babylonians. At the urging of his men, the king gave permission for the prophet to be put to death, but he rescinded the order at the urging of a sympathetic courtier, and so Jeremiah was saved from the mud of the well.


Our gospel text for today continues the first reading’s idea of division and of not compromising the word of God. In the passage, Jesus says that he did not come to bring peace but division. This seems to fly in the face of all that we have ever heard about Jesus Christ and his message of peace and love. We can easily think of examples, such as sectarian violence in Northern Ireland for so many years, to begin to understand what Jesus might be hinting at. Yet in that example we have people who believe in Jesus but who want to impose their own version of the Gospel, whereas the greater division is between those who wish to believe and those who deny the faith or the existence of God, between those who choose life and those who choose death. This struggle is felt most strongly in families, with those whose love and understanding we rely on most. Jesus, like Jeremiah, didn’t compromise or water down his message for the sake of an easier life or of getting more people to follow him, and, like Jeremiah, he too was rejected for his message. Only by following his ways and remaining firm in the faith, even in the face of opposition, can we walk the path of righteousness which leads to eternal life.


The author of today’s second reading from the letter to the Hebrews urges his readers to keep their sights fixed firmly on Jesus in order to gain eternal life. He says this because of the number of opposing and competing views that were trying to win the allegiance of the people at the time. He reminds the people that there are many who have been faithful to God and that, following their example, they should continue on the path towards the Kingdom. They are also reminded that Jesus shed his blood for them. Today there are many competing voices and ideologies trying to drown out the voice of Truth, trying to divert us from a life in Christ. But in all of this we have the Lord as our advocate and the Holy Spirit as our guide, and so we should never waver or give up.


Prayer :

"Lord, may your love consume me and transform my life that I may truly desire nothing more than life with you. Make me strong in love and fidelity that nothing may hinder me from doing your will."


 




성 알베르토 우르타도 크루차가 (Saint Alberto Hurtado Cruchaga)

축 일 : 08월 18일

신 분 : 신부

활동지역 : 다수의 지역

활동년도 : 1901-1952년

같은이름 : 알버트, 알베르또, 알베르뚜스, 알베르투스, 앨버트, 후르타도



성알베르투스 우르타도 크루차가(Albertus Hurtado Cruchaga, 또는 알베르토 우르타도 크루차가)는 1901년 1월 22일 칠레(Chile) 중부에 위치한 비냐델마르(Vina del Mar)에서 태어났다. 우르타도가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얼마 안 되는 재산마저 다 팔아야 했다. 그래서 우르타도와 그의 형제들은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그러면서 우르타도는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된다는 것과 집이 없다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로부터 받는 자애에 대한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는 장학금을 받아 산티아고(Santiago)에 있는 예수회 학교에 들어갔다. 여기서 그는 성모회(the Sodality of Our Lady)의 회원이 되어 가난한 이들의 유익을 증진시키며, 매 주일 오후마다 가장 불쌍한 이웃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1917년 중등교육을 마친 후 우르타도는 예수회에 들어가기를 소망했지만 어머니와 어린 형제들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꿈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매일 오후와 저녁에 일을 해서 가족들을 돌보면서도 가톨릭 대학교에서 법학 공부를 병행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도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매 주일마다 그들을 방문하였다. 병역 의무로 인해 잠시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의무를 완수한 후 1923년 초에 학위를 취득하였다.


우르타도는 1923년 8월 14일 치얀(Chillan)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시작하였다. 1925년에 그는 아르헨티나(Argentina)의 코르도바(Cordoba)로 가서 인문학을 공부했으며, 1927년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에스파냐(Espana)로 갔다. 그러나 1931년 에스파냐에서 예수회의 활동이 금지되자 벨기에(Belgium)의 루뱅(Louvain)으로 가서 신학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는 1933년 8월 24일 루뱅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1935년에는 교육학과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벨기에의 드롱겐(Drongen)에서 종신서원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거치는 제3수련기를 마친 후 1936년 1월 칠레로 돌아왔다. 그는 산티아고에서 성 이냐시오 대학의 종교학 교수로 그리고 가톨릭 대학교의 교육학 교수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학생들을 위한 성모회의 지도를 맡았고, 회원들과 함께 가난한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일에 참여하였다. 우르타도 신부는 자주 피정 지도와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적 지도를 담당했는데, 이를 통해 여러 젊은이들이 사제성소에 응답하였다. 또한 그는 평신도들을 양성하기 위한 탁월한 방법에 대해 기고하기도 했다. 1941년 그는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인 “칠레는 가톨릭 국가인가?”를 출판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에 산티아고 대교구의 가톨릭 청년운동 지도신부가 되었고, 이어 전국적인 가톨릭 청년운동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직무를 창의성과 헌신과 희생으로써 수행하였다.


1944년 10월, 피정 지도를 하던 중 그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가난한 사람들, 특히 산티아고의 거리를 헤매는 수많은 집 없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도록 호소해야 할 책임감을 느꼈다. 그의 요청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이것이 우르타도 신부에 의해 제안되어 집이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집이 없는 이들을 위해 가정과도 같은 환경을 제공하는 자선 활동의 한 형태로 잘 알려진 ‘그리스도의 가정’(El Hogar de Cristo)의 시작이었다. 그는 은인들의 도움과 헌신적인 평신도들의 열성적인 협력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첫 번째 ‘가정’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여성들과 남성들을 위한 가정도 문을 열었다. 가난한 이들은 ‘그리스도의 가정’에서 따뜻한 가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가정들이 점점 증가하면서 새로운 특징들을 갖게 되었다. 즉 어떤 가정은 사회 복귀를 돕는 센터를, 다른 가정은 직업학교를 겸하는 식으로 그 범위를 넓혀갔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교의 가치에서 영감을 받아 그 정신에 따라 이루어졌다.


1945년 그는 ‘소년의 집’(Boys Town) 운동을 연구하고 이를 어떻게 자신의 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숙고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였다. 그의 생애의 마지막 6년은 그리스도의 가정 안에서 다양한 형태를 개발하고 이를 존속시키며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데 헌신한 시기였다. 1947년 그는 교회의 사회교리를 반영한 조합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칠레 노동조합연합(the Chilean Trade Union Association)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1947년과 1950년 사이에 노동조합과 사회적 인문주의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질서에 대한 세 권의 중요한 책들을 저술하였다. 1951년에는 예수회가 정기적으로 교회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전언’(Mensaje, Message)을 창간하였다.


그는 췌장암에 걸려 몇 달 만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는데,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자주 “주님, 저는 만족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자신의 삶 전체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명백히 증거하기 위해 사용한 성 알베르투스 우르타도 크루차가 신부는 1952년 8월 18일 산티아고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예수회의 제3수련기 이후 칠레로 돌아와서 선종할 때까지 15년여의 기간 동안 그는 이 모든 일들을 이룩하였다. 그의 사도직은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개인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 사랑은 가난하고 버려진 어린이들을 위한 위대한 사랑과 평신도들의 양성을 위한 계몽적 열정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사회 정의의 역동적 이해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1994년 10월 1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5년 10월 23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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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_2019년 08월18일(녹) 연중 제20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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