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월24일(녹) 연중 제7주일
The Seventh Sunday in Ordinary Time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오늘은 연중 제7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사랑과 자비입니다. 자비는 정의와 사랑을 내포한 깊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비는 정의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또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의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비와 사랑은 주님의 정의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제1독서는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다윗은 주님께 믿음을 둔 경건한 사람이며 그래서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이러한 다윗에 대하여 불안을 느끼며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때문에 다윗은 사울을 피해 다닙니다. 하루는 다윗을 쫓던 사울이 잠들어 버립니다. 사울을 죽이면 다윗은 하루 아침에 왕이 될 수 있고, 쫓기는 신세도 면할 수 있고 또 원수 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사건을 신앙 안에서 해석합니다.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음에도 죽이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인내와 지혜, 이것이 신앙인이 지닐 참 자세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다윗은 주님을 경외하고 사울 왕에게 최선을 다한 충성의 사람입니다.
제2독서는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사도 바오로의 첫째 편지로써, 육체의 부활에 관한 바오로의 가르침입니다. 부활은 단순한 소생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존재양식입니다. 우리가 심는 것은 장차 이루어질 몸이 아니라 그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몸으로 살아날 것입니다. 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흙의 인간들은 흙으로 된 아담과 같고, 하늘의 인간들은 하늘에 속한 그분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하늘의 영광 안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비천한 존재이지만, 주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성령의 새로운 생명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 루카 복음은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원수에 대한 사랑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신앙과 은총을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원수사랑은 위대한 것이며 이러한 사랑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주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세상에 살면서 서로 마음을 상하고 서로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같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기에, 우리가 서로 형제자매이기에 주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도 주님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이웃과 화해할 때에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잘못에 대하여 용서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 1사무엘기 26,2.7-9.12-13.22-23
< 주님께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지만, 저는 손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
해설) 다윗은 원수를 죽이려는 인간적인 충동을 제지하시고 심판을 주님의 손에 맡기고 살려 주는 자비로운 마음을 보입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고 심판을 주님의 손에 맡기고 살려 주는 자비로운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회개하시기를 기다리십니다.
그 무렵 2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뽑은 부하 삼천 명을 거느리고 지프 광야에 있는 다윗을 찾아 그곳으로 내려갔다. 7 다윗은 아비사이를 데리고 밤을 타서 군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때 사울은 진지 안에서 머리맡 땅바닥에 창을 꽂아 놓고 잠들어 있었다. 아브네르와 그의 군사들도 사울을 둘러싸고 잠들어 있었다. 8 아비사이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오늘 원수를 장군님 손에 넘기셨으니, 이 창으로 그를 단번에 땅에 박아 놓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습니다.” 9 그러나 다윗이 아비사이를 타일렀다. “그분을 해쳐서는 안 된다. 누가 감히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고도 벌 받지 않을 수 있겠느냐?” 12 다윗은 사울의 머리맡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나왔다. 주님께서 그들 위에 깊은 잠을 쏟으시어 그들이 모두 잠들었기 때문에, 다윗을 본 사람도 알아채거나 잠을 깬 사람도 없었다. 13 다윗은 맞은쪽으로 건너가 상대와 거리를 멀리 두고 산꼭대기에 서서, 22 응답하였다. “여기 임금님의 창이 있습니다. 젊은이 하나가 건너와 가져가게 하십시오. 23 주님은 누구에게나 그 의로움과 진실을 되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주님께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지만, 저는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손을 대려 하지 않았습니다.”
+ First Reading, 1 Samuel 26:2, 7-9, 12-13, 22-23
In those days, 2 Saul went down to the desert of Ziph with three thousand picked men of Israel, to search for David in the desert of Ziph. 7 So David and Abishai went among Saul’s soldiers by night and found Saul lying asleep within the barricade,with his spear thrust into the ground at his head and Abner and his men sleeping around him. 8 Abishai whispered to David:“God has delivered your enemy into your grasp this day. Let me nail him to the ground with one thrust of the spear; I will not need a second thrust!”9 But David said to Abishai, “Do not harm him, for who can lay hands on the LORD’s anointed and remain unpunished?” 12 So David took the spear and the water jug from their place at Saul’s head, and they got away without anyone’s seeing or knowing or awakening. All remained asleep, because the LORD had put them into a deep slumber. 13 Going across to an opposite slope, David stood on a remote hilltop at a great distance from Abner, son of Ner, and the troops. 22 He said: “Here is the king’s spear. Let an attendant come over to get it. 23 The LORD will reward each man for his justice and faithfulness. Today, though the LORD delivered you into my grasp, I would not harm the LORD’s anointed.”
+ 코린토 1서 15,45-49
<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
해설) 마지막 아담은 초월적인 생명 원리인 영적인 존재가 되십니다. 더 나아가 그분은 그냥 살아 계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도 현재는 흙에 속한 아담과 같이 썩어 없어질 육신을 가지고 있으나,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여 영광의 몸이 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45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인간 아담이 생명체가 되었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46 그러나 먼저 있었던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것은 그다음입니다. 47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48 흙으로 된 그 사람이 그러하면 흙으로 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 속한 그분께서 그러하시면 하늘에 속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49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 Second Reading, 1 Corinthians 15:45-49
Brothers and sisters: 45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became a living being, the last Adam a life-giving spirit. 46 But the spiritual was not first; rather the natural and then the spiritual. 47 The first man was from the earth, earthly; the second man, from heaven. 48 As was the earthly one, so also are the earthly, and as is the heavenly one, so also are the heavenly. 49 Just as we have borne the image of the earthly one, we shall also bear the image of the heavenly one.
+ 루카 6,27-38
<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해설) 원수 사랑의 세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미워하는 사람들과 저주하는 사람들과 헐뜯는 사람들과 같은 원수들을 위해서 선행을 하고 그들을 축복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죽게 한 원수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원수 사랑을 몸소 실천하십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Luke 6:27-38
Jesus said to his disciples: 27 “To you who hear I say, love your enemies, do good to those who hate you, 28 bless those who curse you, pray for those who mistreat you. 29 To the person who strikes you on one cheek, offer the other one as well, and from the person who takes your cloak, do not withhold even your tunic. 30 Give to everyone who asks of you, and from the one who takes what is yours do not demand it back. 31 Do 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32 For if you love those who love you, what credit is that to you? Even sinners love those who love them. 33 And if you do good to those who do good to you, what credit is that to you? Even sinners do the same. 34 If you lend money to those from whom you expect repayment, what credit is that to you? Even sinners lend to sinners, and get back the same amount. 35 But rather, love your enemies and do good to them, and lend expecting nothing back; then your reward will be great and you will be children of the Most High, for he himself is kind to the ungrateful and the wicked. 36 Be merciful, just as your Father is merciful. 37 “Stop judging and you will not be judged. Stop condemning and you will not be condemned. Forgive and you will be forgiven. 38 Give, and gifts will be given to you; a good measure, packed together, shaken down, and overflowing, will be poured into your lap. For the measure with which you measure will in return be measured out to you.”
나의 말과 행동과 삶에 대해서 묵상해 봅니다. 고백성사를 하려고 꿇어앉으면 늘 죄인임이 부끄럽고 죄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늘 넘치게 은총을 부어 주십니다. 내가 이웃에게 관대하고 너그러워야하는 이유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없애 주시는 분이시니, 우리도 이웃의 허물보다는 주님의 사랑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2019년 02월 24일 일요일
서울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02-3789-5425 010-8889-5425
Juke Ross - Fresh Roses (Audio)
원수를 사랑하여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 루카 6, 27-38
1. 내가 지금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자처하면서 누군가를 저주하거나 불행해지기를 바란 적은 없습니까? 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까? 그리고 어떻게 사랑하라고 하십니까?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2. 나는 자비로운 사람입니까? 나는 내가 사랑하거나 친한 사람들에게만 자비하고 잘 모르거나 미운 사람들에겐 매정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나의 잣대로 남을 자주 재려 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나의 기준과 판단에 맞아야 옳고, 다르거나 차이점이 있으면 인정 못하는 이기적인 모습은 없습니까? 다름의 차이를 인정 못하고 자꾸 내 방식대로 바꾸려고 주장한 적은 없습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판단하면 분노하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심판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습니까? 내 주변에서 나의 잣대에 맞아 상처받은 사람은 없었는지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찾아보십시오.
Today’s Reflection :
Sunday 24, The Seventh Sunday in Ordinary Time
First Reading : 1 Samuel 26:2, 7-9, 12-13, 22-23
Second Reading : 1 Corinthians 15:45-49
Holy Gospel : Luke 6:27-38
Love for enemies
In the first reading from the first book of Samuel, we read of an incident in the life of King David some time before he became king of Israel. David had been the loyal servant of King Saul but Saul feared and detested David’s popularity amongst the people. So Saul set off in pursuit of David, intending to end his life. David and his men come upon Saul during the night and creep into the king’s camp but do not harm the king – David refuses to harm the Lord’s anointed even when it was in his power to end the king’s life. Saul had been chosen by God and David was not going to dismiss that election even though he himself had also been chosen by God and anointed by Samuel. The key element in the story is forgiveness and reconciliation.
In the second reading, St Paul tells the Corinthians that there are two key men, two key humans: the first is Adam while the second and greater is Jesus Christ. The people had been asking about what sort of body they would have following the resurrection and Paul was saying that if they model themselves on the earthly man – Adam – then they will live and die in this world and go no further. But if they model themselves on the heavenly man – Jesus – then they will live and be like him in heaven. We achieve this by modelling ourselves on Jesus Christ and living according to the precepts which he laid down for us in today’s gospel.
In the gospel passage from St Luke is a continuation of last week’s text in which we had the Beatitudes. Today we are told that we are to be compassionate to our fellow men and women just as God has been compassionate with us. The Old Law was very much 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but the New Law – which Jesus has established – is built on forgiveness rather than revenge, on reconciliation rather than retribution, on love rather than war. This we saw in the first reading. The text also expands on the behaviour that a persecuted follower of Jesus Christ is to have: they are to endure the persecution for the sake of the Kingdom and their place in it rather than fight back. Forgiveness, compassion, generosity are to be the hallmarks of the followers of Jesus Christ. The last line of the gospel also reminds us that as we deal with others so too will we be dealt with by others.
Prayer :
"Lord, your love brings freedom and pardon. Fill me with your Holy Spirit and set my heart free that nothing may make me lose my temper, ruffle my peace, take away my joy, nor make me bitter towards anyone" Amen.
성 에텔베르트 (Saint Ethelbert)
축 일 : 02월 24일
신 분 : 왕
활동지역 : 켄트(Kent)
활동년도 : +616년
같은이름 : 에뗄베르또, 에뗄베르뚜스, 에텔베르또, 에텔베르뚜스, 에텔베르토, 에텔베르투스
560년 영국 켄트 왕국의 왕(560-616년)이 된 성 에텔베르트는 5세기에 브리타니아를 침입한 게르만족 중 하나인 주트족(Jutes) 헹기스트(Hengest)의 후손인 에오르멘릭(Eormenric-Irminricus)의 아들이다. 560년 아버지로부터 켄트의 왕위를 이어받은 그는 집권 초기에 웨식스(Wessex)의 시올린(Ceawlin)으로부터 브리타니아 전체 통치권을 빼앗으려고 시도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프랑크족 메로빙거 가문의 샤리베르(Charibert)의 딸 베르타(Bertha)와 결혼함으로써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였다. 그런데 베르타는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므로 결혼 조건으로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베르타는 상리(Senlis)의 성 리웃하드(Liudhard, 5월 7일) 주교를 대동하여 왔으며, 에텔베르트는 그에게 왕국의 수도인 캔터베리(Canterbury)의 옛 성당인 성 마르티누스(Martinus) 성당을 하사하였다.
한편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는 영국 브리타니아족을 침략한 픽트족,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 등 이교 민족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라는 사명을 주어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5월 27일)를 켄트로 파견하였다. 성 에텔베르트는 597년 켄트 해안에 도착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정중하게 맞이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설교와 사도직은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고, 그의 설교와 모범을 보고 성 에텔베르트 왕은 같은 해 예수 성탄 대축일에 여러 신하들과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써 앵글로 색슨족 중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자 왕이 되었다. 당시 왕권이 절정에 다다랐던 성 에텔베르트는 세례를 받은 후 앵글로 색슨 교회의 선교에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캔터베리 대주교좌의 초대 대주교가 되었다.
성 에텔베르트는 자신의 신하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여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을 격려하였다. 그는 거의 56년 동안 선정을 베풀다가 616년 2월 24일 사망하였다. 그의 유해는 캔터베리의 성 베드로와 바오로 수도원 성당에 베르타 왕비와 나란히 안치되었다. 그는 에텔베르투스(Ethelbertus)로도 불린다. 로마 순교록은 오랜 전통대로 그의 축일을 2월 24일자 목록에 기록하고 있고, 지역에 따라서는 같은 달 25일 또는 26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홈
매일미사_2019년 02월24일(녹) 연중 제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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