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The Twenty-fifth Sunday in Ordinary Time
(영문은 연중 제 25주간 전례를 따릅니다. / Korean version of liturgy follows Memorial of Saints Andrew Kim Tae-gon, Priest, and Paul Chong Ha-sang, and Companions, Martyrs of Korea)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순교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느님의 진리를 위해 피로써 증거 하는 행위가 바로 순교입니다. 진리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하느님의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순교는 자기의 생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행위입니다.
제1독서는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모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인간을 불사불멸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의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악마의 시기 때문입니다. 악마의 편을 드는 자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악마를 섬기고 따르는 악인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죽음의 세계로 떨어질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벌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하느님의 의인들은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받을 은총과 축복에 비하면 의인들이 세상에서 받는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의 의인들은 민족들을 다스리고 백성들을 통치할 것이며 주님께서 영원무궁토록 그들의 왕으로 군림하실 것입니다.
제2독서는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는 그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또 우리는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에 힘입어 서로를 사랑합니다. 환난과 궁핍과 핍박과 굶주림과 헐벗음과 온갖 위험도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의 시련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죽음도 생명도 다른 어떤 피조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박해도 순교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 대한 참 사랑은 이 세상의 모든 시련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복음은 루카 복음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먼저 자기중심적 자아를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순교는 증거입니다. 순교는 진리를 위해 자신의 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행위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께로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래서 참 그리스도인도 십자가의 길을 따라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있고, 예수님의 말씀 안에 하느님의 진리가 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모두 예수님의 진리를 증거 한 사람들입니다.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 지혜서 3, 1-9
<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
해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 손에 있어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세상을 떠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의인들은 하느님 안에서 참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의인들은 주님을 의지하고 진리를 깨달으며 주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 First Reading, Wisdom 2:12, 17-20
The wicked say: 12 Let us beset the just one, because he is obnoxious to us;he sets himself against our doings, reproaches us for transgressions of the law and charges us with violations of our training. 17 Let us see whether his words be true; let us find out what will happen to him. 18 For if the just one be the son of God, God will defend him and deliver him from the hand of his foes. 19 With revilement and torture let us put the just one to the test that we may have proof of his gentleness and try his patience. 20 Let us condemn him to a shameful death; for according to his own words, God will take care of him.
+ 로마서 8, 31ㄴ-39
< 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해설) 하느님을 사랑하는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시련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죽음도 생명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받는 현세의 고통은 후세에 받을 불멸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Second Reading, James 3:16-4:3
Beloved: 16 Where jealousy and selfish ambition exist, there is disorder and every foul practice. 17 But the wisdom from above is first of all pure, then peaceable, gentle, compliant, full of mercy and good fruits, without inconstancy or insincerity. 18 And the fruit of righteousness is sown in peace for those who cultivate peace. 4:1 Where do the wars and where do the conflicts among you come from? Is it not from your passions that make war within your members? 2 You covet but do not possess. You kill and envy but you cannot obtain; you fight and wage war. You do not possess because you do not ask. 3 You ask but do not receive, because you ask wrongly, to spend it on your passions.
+ 루카 9, 23-26
<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해설)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 제자는 수난 받으시고 죽으신 스승님을 본받고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자기중심적 자아를 버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기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생명을 잃을 것이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제 목숨을 내어놓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Mark 9:30-37
30 Jesus and his disciples left from there and began a journey through Galilee, but he did not wish anyone to know about it. 31 He was teaching his disciples and telling them, “The Son of Man is to be handed over to men and they will kill him, and three days after his death the Son of Man will rise.” 32 But they did not understand the saying, and they were afraid to question him. 33 They came to Capernaum and, once inside the house, he began to ask them 2 “What were you arguing about on the way?” 34 But they remained silent. They had been discussing among themselves on the way who was the greatest. 35 Then he sat down, called the Twelve, and said to them, “If anyone wishes to be first, he shall be the last of all and the servant of all.” 36 Taking a child, he placed it in their midst, and putting his arms around it, he said to them, 37 “Whoever receives one child such as this in my name, receives me; and whoever receives me, receives not me but the One who sent me.”
주님을 섬기고 따를 때 우리는 시련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금이 불로 단련되듯이 하느님께서는 시련 속에서 의인을 단련시키십니다. 주님만 믿고 주님께만 희망을 두고 주님의 자비만 바라는 사람에게 주님은 하늘의 영광을 마련하실 것입니다.
2018년 09월 23일 일요일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02-3789-5425 010-8889-5425
나는 천주교인이오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 루카 9, 23-26
1. 예수님의 말씀 중에 "자신을 버린다"는 것과 "자신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나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나의 '십자가'는 무엇이며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나의 십자가를 비교하며 바라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내 십자가를 통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2. 나는 살면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은 없습니까? 누가 볼까봐 숨어서 성호를 긋거나 소리죽여 기도한 적은 없습니까?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부끄럽나요? 순교자들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해 볼 때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생각하는 "하느님 나라"는 어떤 것입니까?
Today’s Reflection :
Twenty-fifth Sunday in Ordinary Time
1st Reading : Wisdom 2:12, 17-20
2nd Reading : James 3:16-4:3
Gospel: Mark 9:30-37
Jesus predicts crucifixion
In our first reading from the Book of Wisdom we see the people plotting the downfall of a virtuous man of God. They intend to deal cruelly with the innocent man because he has commented on their way of life even though they acknowledge that they have broken the Law. They intend to test the innocent man and see if he will break under pressure and become one like them. Much of what is said brings to mind the Passion of Christ and the suffering he went through in silence for our sake.
In the gospel we see Jesus teaching his disciples as they travel to Capernaum. In the first section Jesus again speaks about his death and resurrection and it is made clear that the disciples don’t understand this, but are too afraid to ask. The second part of the text is a teaching on power and status. The disciples had been arguing about which of them was the greatest, perhaps because they had misinterpreted Jesus’ teachings about the Kingdom and presumed that it would be a kingdom in which they would have honour and prestige. Instead, Jesus tells them that the greatest is the least and to this end he placed a child before them because, at the time, children had no power, authority or status in society – that would only come when they reached adulthood. The true disciple should welcome a child and deal kindly with them because they are without power, but they should treat everyone in this way too. In welcoming children they welcome Jesus Christ, who is the greatest envoy of the Father. They should also see themselves as powerless and not seek after status beyond that of a child or an envoy. Ambition can be a good thing but only if it is kept in check and if pursued for the right reason.
In the second reading, the author contrasts the ways of this world and the ways of the Lord: one brings disharmony and arguments while the other brings peace and understanding. The people are called on to live the Lord’s ways rather than the ways of this world. The author suggests that the reason for such discord is because the people want their desires answered, but this doesn’t always happen. The author exhorts the people to pray properly and such divisions will disappear because the people will get what they need. However, this is not to suggest that every whim of the people is granted but that those who pray properly are open to a change of heart, are open to seeing their want for what it is – a want or an indulgence and not a necessity or something that is good for them. In this way they will accept what comes from the hand of God for their good and the good of the community.
Prayer :
"Lord, by your cross you have redeemed the world and revealed your glory and triumph over sin and death. May I never fail to see your glory and victory in the cross. Help me to conform my life to your will and to follow in your way of holiness." - Amen.
성녀 테클라 (Saint Thecla)
축 일 : 9월 23일
신 분 : 바오로의 제자,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 이코니움(Iconium)
활동년도 : +100년경
같은이름 : 데클라, 떼끌라, 테끌라
2세기에 기록된 묵시록적 작품과 유사한 형식을 갖고 있는 "바오로와 테클라 행전"(Acta Pauli et Theclae)에 의하면, 성녀 테클라는 소아시아 지방 이코니움(오늘날 터키의 코니아, Konya)의 저명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사도 바오로(Paulus)의 개인적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성녀는 18세 때에 이코니움에 있는 오네시포루스(Onesiphorus)의 집에서 사도 바오로가 행한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관한 설교를 듣고 감명을 받아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례를 받은 성녀 테클라는 결혼 약속을 파기하고 전적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많은 수모를 당하며 살아야 했다. 파혼당한 약혼자가 이코니움 지방 사람들을 선동하여 사도 바오로를 감금하도록 했고, 성녀 테클라는 감옥에 갖힌 사도를 몰래 찾아갔다가 들켜, 바오로는 추방당하였고 그녀는 화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성녀 테클라가 성호를 그은 후 불타는 장작더미에 던져지자 갑자기 비가 내려 불이 꺼졌다고 한다.
기적적으로 화형을 면한 그녀는 사도 바오로를 만나 동행을 간청하였고 결국 안티오키아까지 갔다. 안티오키아에 살던 알렉산데르(Alexander)라는 사람이 그녀에게 반했으나, 그녀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결국 무고를 하였다. 그래서 성녀 테클라는 야생 동물들이 있는 곳에 갇히기도 하고, 황소에 묶여 몸이 찢기기도 하고, 심지어 독사 굴에 던져지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이 모든 위험에서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듯 수많은 고난을 겪은 후 성녀 테클라는 오늘날 터키의 이셀(Icel) 지역인 칼리카둠(Calycadum)의 셀레우키아 트라케이아(Seleukeia Tracheia)에 있는 동굴에서 홀로 생활하면서 이교도들을 개종시키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기적적으로 치료해 주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지역 의사들의 반발로 총독에게 체포되었는데 그때 성녀의 나이는 90세였다. 성녀 테클라의 죽음과 관련된 전설에 의하면, 그녀가 바위를 향해 달려가자 바위가 저절로 열리고, 그녀가 바위 안으로 사라지자 바위가 닫혀 무덤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사도 바오로의 제자로서 최초의 여성 순교자였다.
출처 : 가톨릭 홈
매일미사_2018년 09월23일(녹) 연중 제25주일
(주소를 클릭하세요)
Comenta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