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월09일(녹) 연중 제23주일
Twenty-Third Sunday in Ordinary Time
그 날이 오면
오늘은 연중 제23주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이 오면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절름발이가 뛰어 다니고, 황무지에 냇물이 흐를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늘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십니다.
제1독서는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곧 오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오시면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먼저 찾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오시는 그 날이 오면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려 듣게 되고,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기뻐 뛰며, 벙어리는 혀가 풀려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이 오면 사막에 샘이 터지고 황무지에는 시냇물이 흐를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메마른 곳은 샘터가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먼저 구원하실 것입니다. 진정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는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제2독서는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아 주며 자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도 사람들을 차별해서 대우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개인에 대해 편애를 드러내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지만, 만일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그는 분명히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일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가난하고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에게 더욱 큰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복음은 마르코 복음입니다. 사람들이 귀먹은 반벙어리를 예수님께 데려와서 그에게 안수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를 따로 불러내시어 그의 귓속에 힘을 불어 넣으시며 '열려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귀먹은 반벙어리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됩니다. 주님의 날이 오면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고, 절름발이가 뛰고, 벙어리가 노래할 것이라고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절름발이를 뛰게 하시며, 벙어리를 노래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그 크신 사랑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 이사야서 35, 4-7ㄴ
<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
해설) 주님의 날이 오면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려 듣게 되고,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뛰며, 벙어리는 혀가 풀려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사막에 샘이 터지고, 황무지에 냇물이 흐를 것이며,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메마른 곳은 샘터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날이 오면 하느님께서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4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5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6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7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 되리라.
+ First Reading, Isaiah 35:4-7a
Thus says the LORD: 4 Say to those whose hearts are frightened: Be strong, fear not! Here is your God, he comes with vindication; with divine recompense he comes to save you. 5 Then will the eyes of the blind be opened, the ears of the deaf be cleared; 6 then will the lame leap like a stag, then the tongue of the mute will sing. Streams will burst forth in the desert,and rivers in the steppe. 7 The burning sands will become pools, and the thirsty ground, springs of water.
+ 야고보서 2, 1-5
<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
해설) 그리스도 공동체의 규범은 주님의 공평한 태도가 기준입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차별은 주님의 뜻에 어긋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며 어떤 개인에 대한 편애를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어떤 사람을 지나치게 사랑하신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일 것입니다.
1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2 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 3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 한다면, 4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5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 Second Reading, James 2:1-5
1 My brothers and sisters, show no partiality as you adhere to the faith in our glorious Lord Jesus Christ. 2 For if a man with gold rings and fine clothes comes into your assembly, and a poor person in shabby clothes also comes in, 3 and you pay attention to the one wearing the fine clothes and say, “Sit here, please, ” while you say to the poor one, “Stand there, ” or “Sit at my feet, ” 4 have you not made distinctions among yourselves and become judges with evil designs? 5 Listen, my beloved brothers and sisters. Did not God choose those who are poor in the world to be rich in faith and heirs of the kingdom that he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 마르코 7, 31-37
<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신다. >
해설) 사람들이 귀먹은 반벙어리를 예수님께 데려오자 예수님께서는 그를 치유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귓속에 힘을 불어 넣으시며 '열려라' 하시자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됩니다.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신 예수님의 놀라운 사건으로 사람들은 주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Mark 7:31-37
31 Then he returned from the region of Tyre, and went through Sidon to the Sea of Galilee, through the region of the Decapolis. 32 And they brought to him a man who was deaf and had an impediment in his speech; and they besought him to lay his hand upon him. 33 And taking him aside from the multitude privately, he put his fingers into his ears, and he spat and touched his tongue; 34 and looking up to heaven, he sighed, and said to him, "Eph'phatha," that is, "Be opened." 35 And his ears were opened, his tongue was released, and he spoke plainly. 36 And he charged them to tell no one; but the more he charged them, the more zealously they proclaimed it. 37 And they were astonished beyond measure, saying, "He has done all things well; he even makes the deaf hear and the dumb speak."
우리는 잘 들을 수 있고 잘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들어야 할 말을 듣지 못하고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우리가 말해야 할 것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청한다면 우리의 귀와 입은 하느님의 말씀만 듣고 말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2018년 09월 09일 일요일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02-3789-5425 010-8889-5425
Lauren Daigle - You Say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시다.
+ 마르코 7, 31-37
1. 귀먹은 반벙어리는 예수님께 치유 받고 그동안 세상과 단절된 삶에서 소통할 수 있는 삶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이 사람은 새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그를 데려온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를 데려왔습니까? 왜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알리지 말라 하셨는데도 온 고을로 소문이 퍼졌습니까?
2. 나는 세상과 주님으로 부터 어떻게 단절되곤 합니까? 육체적으로는 건강하지만 영적으로는 귀머거리에 반벙어리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음을 닫고, 귀를 막고, 사랑을 전하지 않으며 말씀 안에 살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소통할 수 없는 단절된 삶이 아닐까요? 나도 예수님께서 나를 어루만져 치유하실 수 있도록 맡기며 '열려라' 하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Today’s Reflection :
The Twenty-third Sunday in Ordinary Time
1st Reading : Isaiah 35:4-7
2nd Reading : James 2:1-5
Gospel: Mark 7:31-37
Jesus heals at Sidon
In our first reading we see God speaking through the prophet Isaiah and telling the people that the one who is to free them is coming. Those who are blind will see, the deaf will hear, and the land will once again become fertile. This is part of a passage containing the promise of salvation and is part of the vision of the glorious future that lies in store for Israel.
In our gospel text from St Mark we see Jesus restoring hearing and speech to a man just as the Lord promised through the prophet Isaiah. A man is brought to Jesus by the people and, taking him aside in private, the man is healed by the Lord. Jesus then tells the people to say nothing about this but the more he insisted the more they told the story. This seems odd on the part of Jesus – surely he wanted as many people as possible to know of him. However, they were telling others about the miracle whereas the preaching and message of the Good News was more important than the miracles the Lord worked, as the miracles were the proof of the message that God loves everyone and wants them to be whole. Jesus is the fulfilment of God’s word and he does bring us salvation and freedom: freedom from all that would keep us separate from God.
In the passage from the letter attributed to St James, the reader is reminded not to judge others, and certainly not by appearances. The example cited of the contrast between a man in fine clothes and a man who is poorly dressed is one which is easily understood. The author also says that the poor have a special place in God’s care and, therefore, all those who profess the name of Christ should also have a special care for the poor. At the very least everyone is to be treated as equals because everyone is equal in the eyes of God who judges by standards different from human standards.
Prayer :
"Lord, fill me with your Holy Spirit and inflame my heart with love and compassion. Make me attentive to the needs of others that I may show them kindness and care. Make me an instrument of your mercy and peace that I may help others find healing and wholeness in you." - Amen.
콜롬비아의 성 베드로 클라베르 (Saint Peter Claverof Columbia)
축 일 : 9월 09일
신 분 : 신부, 선교사
활동지역 : 콜롬비아(Colombia)
활동년도 : 1580-1654년
같은이름 : 끌라베르,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 근교 베르두(Verdu)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성 베드로 클라베르(Petrus Claver)는 바르셀로나 대학교에서 공부한 다음 1602년 8월 7일 예수회에 입회하여 1604년까지 타라고나(Tarragona)에서 수련을 받았다. 그는 마요르카(Mallorca) 섬의 몬테시온 예수회 대학에서 1608년까지 철학을 공부하면서 같은 예수회원인 성 알폰수스 로드리게스(Alfonsus Rodriguez, 10월 30일) 수사를 만나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성 로드리게스 수사는 그에게 신대륙으로 가서 선교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래서 그는 선교사가 되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1610년 그는 관구장의 지시로 다른 3명의 예수회원들과 함께 콜롬비아 카르타헤나(Cartagena) 항에 도착하였다. 그는 1612년부터 1615년까지 콜롬비아의 수도인 보고타(Bogota)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616년 카르타헤나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당시 콜롬비아는 에스파냐의 식민지였고, 카르타헤나는 노예 매매의 중심지였으므로 성 클라베르는 알폰소 데 산도발(Alfonso de Sandoval) 신부와 함께 콜롬비아 인디오들의 처참한 상황을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서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집단 수용되는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음식물과 의약품을 공급하였고, 정기적으로 수용 막사를 방문하여 나병에 걸린 노예들을 돌보아 주면서 그들의 벗이 되었다. 성 클라베르는 40영 년 동안 흑인 노예들을 위하여 헌신하였는데, 그가 생전에 세례를 준 흑인 노예만도 3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는 또한 하루 종일 노예들을 방문하여 고해성사를 주었고, 카르타헤나의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그의 영적 자녀가 될 정도로 전 생애를 흑인 노예들을 위해서 살았다.
그는 스스로 엄격한 생활을 실천하였고, 살아 있는 동안에 이미 초자연적 은혜를 받아 예언도 하였고 또 기적하는 능력도 있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힘도 매우 강하였다. 그는 1650년에 전염병에 걸렸다가 곧 회복되었으나, 세상을 떠나기 전 4년 동안 누워서 생활해야 했다. 그는 1654년 9월 8일 카르타헤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851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뒤, 1888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황 레오 13세는 1896년에 성 베드로 클라베르를 흑인 노예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하는 선교사들의 수호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현재 그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특히 콜롬비아 선교의 수호성인이며 흑인의 사도로 불린다.
성 베드로 클라베르 알아보기
http://blog.daum.net/joe3086/1094
출처 : 가톨릭 홈
매일미사_2018년 09월09일(녹) 연중 제2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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