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6일(녹)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Tuesday of the Twelfth Week in Ordinary Time
+ 2열왕기 19,9ㄴ-11.14-21.31-35ㄱ.36
< 나는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니, 이는 나 자신과 다윗 때문이다.>
해설) 아시리아의 왕이 유다 왕 히즈키야에게 특사를 보내어 서신을 전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히즈키야는 그 편지를 들고 성전으로 올라가서 주님께서 전능하심을 보여 주시도록 간청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구원의 말씀을 내리십니다. '나의 종 다윗을 보아서 내가 이 성을 지키고 구원하리라.'
그 무렵 9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히즈키야에게 사신들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10 “너희는 유다 임금 히즈키야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네가 믿는 너의 하느님이, ′예루살렘은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다.′ 하면서, 너를 속이는 일이 없게 하여라. 11 자, 아시리아 임금들이 다른 모든 나라를 전멸시키면서 어떻게 하였는지 너는 듣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너만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14 히즈키야는 사신들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읽었다. 그런 다음 히즈키야는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서, 그것을 주님 앞에 펼쳐 놓았다. 15 그리고 히즈키야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세상의 모든 왕국 위에 당신 홀로 하느님이십니다. 당신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16 주님,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주님, 눈을 뜨고 보아 주십시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조롱하려고 산헤립이 보낸 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주님, 사실 아시리아 임금들은 민족들과 그 영토를 황폐하게 하고, 18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것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으로서 나무와 돌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것들을 없애 버릴 수 있었습니다. 19 그러나 이제 주 저희 하느님, 부디 저희를 저자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모든 왕국이, 주님, 당신 홀로 하느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20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히즈키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 때문에 네가 나에게 바친 기도를 내가 들었다.’ 21 주님께서 그를 두고 하신 말씀은 이러합니다. ‘처녀 딸 시온이 너를 경멸한다, 너를 멸시한다. 딸 예루살렘이 네 뒤에서 머리를 흔든다. 31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생존자들이 시온 산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라.’ 32 그러므로 주님께서 아시리아 임금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이 도성에 들어오지 못하고, 이곳으로 활을 쏘지도 못하리라. 방패를 앞세워 접근하지도 못하고, 공격 축대를 쌓지도 못하리라. 33 자기가 왔던 그 길로 되돌아가고, 이 도성에는 들어오지 못하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34 나는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니, 이는 나 자신 때문이며, 나의 종 다윗 때문이다.’” 35 그날 밤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 36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그곳을 떠나 되돌아가서 니네베에 머물렀다.
+ First Reading, 2 Kings 19:9b-11, 14-21, 31-35a, 36
9 Sennacherib, king of Assyria, sent envoys to Hezekiah with this message: 10 "Thus shall you say to Hezekiah, king of Judah: 'Do not let your God on whom you rely deceive you by saying that Jerusalem will not be handed over to the king of Assyria. 11 You have heard what the kings of Assyria have done to all other countries: they doomed them! Will you, then, be saved?'" 14 Hezekiah took the letter from the hand of the messengers and read it; then he went up to the temple of the LORD, and spreading it out before him, 15 he prayed in the LORD's presence: "O LORD, God of Israel, enthroned upon the cherubim! You alone are God over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You have made the heavens and the earth. 16 Incline your ear, O LORD, and listen! Open your eyes, O LORD, and see! Hear the words of Sennacherib which he sent to taunt the living God. 17 Truly, O LORD, the kings of Assyria have laid waste the nations and their lands, 18 and cast their gods into the fire; they destroyed them because they were not gods, but the work of human hands, wood and stone. 19 Therefore, O LORD, our God, save us from the power of this man, that all the kingdoms of the earth may know that you alone, O LORD, are God." 20 Then Isaiah, son of Amoz, sent this message to Hezekiah: "Thus says the LORD, the God of Israel, in answer to your prayer for help against Sennacherib, king of Assyria: I have listened! 21 This is the word the LORD has spoken concerning him: "'She despises you, laughs you to scorn, the virgin daughter Zion! Behind you she wags her head, daughter Jerusalem. 31 "'For out of Jerusalem shall come a remnant, and from Mount Zion, survivors. The zeal of the LORD of hosts shall do this.' 32 "Therefore, thus says the LORD concerning the king of Assyria: 'He shall not reach this city, nor shoot an arrow at it, nor come before it with a shield, nor cast up siege-works against it. 33 He shall return by the same way he came, without entering the city, says the LORD. 34 I will shield and save this city for my own sake, and for the sake of my servant David.'" 35 That night the angel of the LORD went forth and struck down one hundred and eighty-five thousand men in the Assyrian camp. 36 So Sennacherib, the king of Assyria, broke camp, and went back home to Nineveh.
묵상) 아시리아 왕이 보낸 오만한 편지는 유다의 왕 히즈키야와 유다 백성이 주님께 드리는 믿음과 신념을 뒤흔들어 놓은 하나의 도전입니다. 히즈키야 왕은 주님의 지혜를 청하면서 주님께 온전히 의탁합니다. 우리 신앙에 도전해 오는 그릇된 가치관들을 이기는 길은 주님의 도움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 마태오 7,6.12-14
<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
해설) 남에게 바라는 대로 그대로 남에게 해 주라는 말씀은 자기에게 해 주기 바라는 것을 먼저 상대방에게 해 주라는 것입니다. 사랑받고 싶으면 먼저 사랑해 주고, 인정받고 싶으면 먼저 인정해 주고, 칭찬받고 싶으면 먼저 칭찬해 주고, 존경받고 싶으면 먼저 존경해 주어야 합니다. 황금처럼 귀한 율법이라고 해서 황금률이라고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Matthew 7:6, 12-14
Jesus said to his disciples: 6 "Do not give what is holy to dogs, or throw your pearls before swine, lest they trample them underfoot, and turn and tear you to pieces. 12 "Do to others whatever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This is the Law and the Prophets. 13 "Enter through the narrow gate; for the gate is wide and the road broad that leads to destruction,and those who enter through it are many. 14 How narrow the gate and constricted the road that leads to life. And those who find it are few."
묵상) 남에게 바라기는 쉬워도 자기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넓은 문과 넓은 길로 가기는 쉬워도 좁은 문과 험한 길로 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쉬운 길은 사람이 많지만 멸망의 길이고, 힘든 길은 찾는 사람이 적지만 참 생명의 길입니다. 참 생명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고 따르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험하고 힘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이요 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느님께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예수님을 따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성모님의 손을 잡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 이를 것입니다.
2018년 06월 26일 화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Golden Rule - Nature Jams
좁은문, 황금률
+ 마태오 7,6.12-14
1. 나는 상대방을 비난하고 얕보면서 대접받길 원하고 대우를 바라지는 않았습니까? 나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았습니까? 남에게 바라는 대로 그대로 남에게 해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2.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얼마나 따르며 살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이 때로는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집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험하고 힘들어 쉽고 넓은 길을 택하고 십은 유혹이 들지는 않았습니까? 나는 어떤 문을 어떻게 두드리고 있습니까? 이승의 삶이 비록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주님이 주시는 희망의 말씀을 믿고 따라갈 수 있는 용기가 내게 있습니까?
Wednesday of the Twelfth Week in Ordinary Time
1st Reading : 2 Kings 19:9-11, 14-21, 31-36
Gospel : Matthew 7:15-207:6, 12-14
The power of prayer and the golden rule
Despite being attacked by a more powerful nation in our reading from the second book of the Kings, Hezekiah prays to the Lord for deliverance for his people and, as a result of his trust in God, is delivered safely. The Assyrians? who had over-run the northern kingdom? were now attacking the southern kingdom and only one city remained free ? Jerusalem.
In the Gospel, Christ tells us to treat others as we would have them treat us. We are reminded to always remain faithful to the Word of God and to always put our trust in him.
Prayer "Let me love you, my Lord and my God, and see myself as I really am ? a pilgrim in this world, a Christian called to respect and love all whose lives I touch, those in authority over me or those under my authority, my friends and my enemies. Help me to conquer anger with gentleness, greed by generosity, apathy by fervor. Help me to forget myself and reach out towards others." - Amen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St. Josemaria Escriva)
축 일 : 6월 26일
신 분 : 설립자, 신부
활동지역 : 다수의 지역
활동년도 : 1902-1975년
같은이름 : 발라게르, 에스끄리바, 요셉마리아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는 1902년 1월 9일 에스파냐의 바르바스트로(Barbastro)에서 아버지 호세 에스크리바(Jose Escriva)와 어머니 마리아 돌로레스 알바스(Maria Dolores Albas)의 여섯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나 그 해 1월 13일에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의 부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굳건한 신앙과 그리스도인다운 덕행, 잦은 고해성사와 영성체, 기도를 향한 굳은 의지, 동정 마리아께 대한 신심에 기초한 삶의 모범을 통해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활기차고 건강하며 정직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언제든지 마음을 열고 모든 근심걱정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호세마리아를 격려해 주었고, 항상 그의 질문에 애정을 갖고 다정하게 응답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는데, 1910년에서 1913년 사이에 그는 세 명의 누이동생이 사망하는 슬픔을 겪었고, 소규모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에 따른 재정적인 문제로 1915년 그의 가족은 인근 마을인 로그로뇨(Logrono)로 이주하였다.
1917-1918년 겨울에 호세마리아는 자신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어떤 일을 경험했다. 그 해 성탄절에 로그로뇨에는 많은 눈이 내렸는데, 어느 날 그는 눈 위에 얼어붙은 발자국을 보았다. 그것은 맨발의 카르멜회 수도자들이 남긴 것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호세마리아는 자신이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어떻게 희생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는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에 말씀하시기 시작한 것으로, 그는 어렴풋이나마 가장 위대한 사랑을 갈구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사제가 되려는 결심을 했고, 그러면 하느님의 뜻을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로그로뇨의 신학교에서 사제직을 위한 과정을 시작했고, 1920년 사라고사(Saragossa)에 있는 교황청립 신학대학에 들어가 사제품을 위한 준비를 마무리했다. 동시에 그는 아버지의 제의와 장상의 허락으로 사라고사의 대학에서 시민법도 함께 전공하였다. 그의 관대하고 활기 있는 성품과 모든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정직하고 침착한 성격은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그의 경건한 생활은 동료들에게조차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학문적 열정 또한 동료 신학생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1922년, 20살의 나이에 사라고사의 대주교에 의해 신학교의 감독 또는 학사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는 많은 시간을 성체 앞에서 기도하며 보냈고, 이는 그의 영성생활이 성체성사에 깊이 뿌리를 내리도록 만들었다. 또한 그는 매일같이 필라르(Pilar)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찾아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달라고 성모님께 전구하였다.
1924년 11월 27일 그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접했고, 그해 12월 부제품을 받고 이듬해 3월 28일 사라고사의 성 카롤루스 신학교 성당에서 디아스 고마라(Diaz Gomara)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이틀 후 그는 필라르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경당에서 첫 번째 장엄미사를 집전하였고, 3월 31일에는 보좌신부로 발령받은 교구의 작은 시골마을인 페르디게라(Perdiguera)로 이동하였다. 1927년 4월 그의 대주교의 승인을 받고 시민법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마드리드(Madrid)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이 학위는 에스파냐 수도에 있는 중앙 대학에 의해서만 주어졌었다. 마드리드에서 그의 사도적 열정은 그를 다양한 계층의 학생, 예술가, 노동자, 학자, 사제들과의 만남에로 인도했고, 많은 시간을 어린이들과 도시 외곽의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보내게 했다. 동시에 그는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법률을 가르치며 여러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도 했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일상적이거나 비범한 분야 모두에서 풍부한 은총을 주셨다. 그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봉사를 통해 많은 열매를 거두었다. 1928년 10월 2일 마드리드에서 피정을 하던 호세마리아 신부는 지난 몇 해 동안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내적인 움직임을 기록했고, 그러면서 어렴풋이 알던 자신의 소명을 보다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오푸스 데이’(Opus Dei, 하느님의 사업이란 뜻)라는 재속 수도회이다.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교회 안에서 새로운 소명의 길을 열어주셨고, 그것은 세상 한가운데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의 노동을 성화함으로써 사도직의 거룩함과 실천에 응답하도록 전파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몇 달 후인 1930년 2월 14일 하느님께서는 또한 오푸스 데이가 여성들 안에서도 전파될 수 있도록 그를 일깨워주셨다.
그 순간 이후 호세마리아는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남녀들이 자신의 사명을 완성하도록 양육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는 자신을 혁신가나 개혁가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에게 압도되고 교회에 지속적인 활력을 주시는 성령에 의해 쇄신되어 이웃을 사랑하고 일상생활 안에서 거룩함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오푸스 데이의 존재 이유라고 보았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그의 뜻을 따르기 시작했는데, 특별히 대학교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그러했다. 그는 그들의 마음 안에 모든 이에게 봉사할 수 있는 진정한 결심을 굳히도록 도와주었다. 이 세상의 지식과 문화가 사회 전체를 복음화하기 위한 열쇠가 됨을 깨달은 그는 1933년 대학 안에 ‘DYA 아카데미’라는 센터를 열고 이듬해 사회 복음화를 위해 ‘영성적 고려’라는 책을 처음 발간했으며, 그 이후 372권의 책을 더 출판하였다.
이렇게 오푸스 데이가 그 첫 걸음을 내디디는 동안 1936년에 에스파냐 내전이 발발했다. 마드리드에서도 심각한 종교 박해가 일어났지만 호세마리아는 기도와 인내 그리고 사도적 열정으로 이에 맞서 나갔다. 이 시기는 교회에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영성과 사도직이 성장하고 희망이 빛을 발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1939년 내전이 끝나자 그는 에스파냐 반도 전역에서 사도직 활동에 대한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그는 많은 대학생들과 함께 사회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를 모셔다주며 그리스도인의 소명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깨닫도록 해주었다. 특히 내전으로 인해 야기된 에스파냐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용서와 사랑, 평화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많은 주교들이 교구의 성직자와 평신도들 위해 그의 강의를 청했고, 수도회 장상들 역시 그러했다. 그는 1941년 에스파냐 동북부 레리다(Lerida)에서 사제들을 위한 피정 강의를 하던 도중 오푸스 데이의 사도직 안에서 그에게 큰 도움을 주었던 어머니의 선종 소식을 듣기도 했다.
1943년 그는 미사를 집전하면서 오푸스 데이의 정신을 교구사제들의 삶에 육화시키기 위한 성 십자가의 사제회(Priestly Society of the Holy Cross)를 오푸스 데이 안에 설립할 필요성을 느꼈다. 1944년 6월 25일 세 명의 기술자가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인 알바로 델 포르틸로(Alvaro del Portillo)는 설립자를 계승하여 오푸스 데이의 대표가 되었다. 성 십자가의 사제회는 교구사제와 사제직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영성적 형성과 활동에 있어서 지역교회의 사목자들과 조화를 이루었고, 교구사제로 머물며 오푸스 데이의 정신을 실천하는 성 십자가의 사제회에 참여하는 교구사제들은 더욱 많아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호세마리아는 오푸스 데이의 정신을 보편교회 전역에 전파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의 사도직 활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46년 그는 오푸스 데이에 대한 교황청의 승인을 얻기 위해 로마로 본부를 옮겼고, 1947년 2월 24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로부터 ‘데크레툼 라우디스’(decretum laudis, 특별법)에 의거해 가승인을 받았으며, 3년 후인 1950년 6월 16일 교회의 최종 승인을 받아 교황청 직속 재속 수도회가 되었다. 이로써 자신의 노동과 자선 그리고 기도로써 오푸스 데이의 사도적 활동에 동참할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 비가톨릭 신자와 심지어 비그리스도인까지도 오푸스 데이의 협력자로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호세마리아 신부는 오푸스 데이 본부를 로마에 안착시킨 후 교회가 원하는 곳에서 봉사하며 사도좌와 교계제도에 더욱 일치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건강상의 어려움에 직면해서도 전 세계로 사도직 활동을 확장했고, 이로 인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무조건적인 사랑의 증인으로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행하는 것이 참된 덕목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위대할수록 세상은 작아지기 마련이다. 세상 모든 곳에서 주교의 부르심에 따라 자신의 사도직 안에서 복음화를 위한 사명을 수행하고,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이 흘러넘치도록 하려는 그의 소망은 더욱 커졌다. 그래서 매우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시행되었다.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대학, 농업 종사자를 위한 학교, 대학교,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병원과 의료센터 등 그의 활동은 종종 끝도 없는 바다와도 비교되었다.
교황 성 요한 23세(Joannes XXIII)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소집을 발표했을 때 호세마리아는 이 공의회가 만족스런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기 시작했다. 공의회의 심의 결과로서 교회의 교도권은 거룩함에로의 보편적 부르심, 거룩함과 사도직을 위한 방법으로서의 전문적인 일, 현세의 노동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가치와 합당한 제한, 내적 생활의 중심이자 기초로서의 거룩한 미사 등 오푸스 데이 정신의 기초적인 측면들을 확인했다. 호세마리아는 공의회의 자문위원으로서 수많은 교부와 전문가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위한 공의회에서 선구자적인 면모를 보였으며, 오푸스 데이의 활동을 통해 공의회의 가르침과 일치하여 공의회의 정신을 촉진하도록 부지런히 일했다. 하지만 그는 조직적인 활동도 중요하지만 내적인 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가르쳤다.
그는 일상생활을 통해 성성(聖性)을 얻을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기도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깊은 내면의 생활을 위해 투쟁하는 것뿐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모든 것은 기도가 되고 또한 모든 것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기 때문이다. 즉 모든 종류의 일이 기도가 될 수 있고, 또 실제로 기도가 되고 사도직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호세마리아가 생각한 사도직의 기초는 세상 한가운데서 얻은 그의 내적인 체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기도와 성사로써 자라나고 성체성사를 위한 강렬한 사랑으로서 표현되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몇 해 동안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많은 일정을 수행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항상 단순하고 친밀한 목소리로 하느님과 성사, 그리스도인의 헌신, 노동의 신성함, 그리고 교회와 교황에 대한 사랑을 강조했다. 1975년 6월 26일 정오 호세마리아는 작업실에서 심장 발작으로 선종했다. 그 당시 오푸스 데이는 이미 모든 대륙에 전파되었고, 80개 나라에서 6만여 명이 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의 선종 이후 많은 사람들이 교황에게 그의 시복시성을 청했고, 1981년 심사가 시작되었다. 1992년 5월 17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수많은 순례자들 앞에서 그의 시복식을 거행했고, 2002년 10월 6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교황은 30만 명이 운집한 시성식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일상생활의 중심이자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새 성인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데 발라게르 이 알바스(Josemaria Escriva de Balaguer y Alba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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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_2018년 06월26일(녹)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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