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7일(녹) 연중 제11주일
Eleventh Sunday in Ordinary Time
하느님 나라 (Kingdom of God)
오늘은 연중 제11주일입니다. 오늘은 연중 제11주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핵심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땅에 심은 씨앗과 같습니다. 씨앗을 뿌려 놓았는데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낟알이 맺힙니다. 곡식이 익으면 농부는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낫을 댑니다.
제1독서는 에제키엘 예언서입니다. 여호야킨이 유다 왕이 되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으로 와서 여호야킨과 모후와 왕비들과 나라의 고관들을 모두 바빌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런 다음 바빌론 임금은 여호야킨의 삼촌인 마탄냐를 임금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치드키야로 바꾸게 하였습니다. 유다 왕 치드키야는 바빌론이 세운 왕이기 때문에 이집트에 도움을 요청하지 말아야 하고 바빌론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바빌론 지배의 위기 상황에서 당장 벗어나려는 시도는 더 심각한 멸망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희망을 보여줍니다. 높고 우뚝한 산위에 주님께서 몸소 향백나무의 햇순을 따서 심을 것입니다. 그러면 시든 나무를 무성하게 만드신 분이 주님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2독서는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모든 것의 끝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를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고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될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를 떠나서 주님과 함께 평안히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든지 육체를 떠나서 주님 곁에 가 있든지 오직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최후의 심판 날에는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한 일들이 낱낱이 드러나서 잘한 일들은 상을 받고 잘못한 일들은 벌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마르코 복음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땅에 뿌려진 씨앗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 놓았는데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것이 자라는지 모릅니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낟알이 맺힙니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낫을 댑니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은 것이지만 심어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를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이나 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처음에는 미미하게 시작하지만 종말에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 에제키엘 17,22-24
< 낮은 나무는 높이리라. >
해설) 유다 왕 치드카야는 이집트에 도움을 요청하지 말아야 하고 바빌론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위기 상황에서 당장 벗어나려는 시도는 더 심각한 멸망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희망의 앞길을 보여줍니다. 높고 우뚝한 산위에 주님께서 몸소 향백나무 햇순을 심을 것입니다. 그러면 시든 나무를 무성하게 만드신 분이 주님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22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손수 높은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서 심으리라. 가장 높은 가지들에서 연한 것을 하나 꺾어 내가 손수 높고 우뚝한 산 위에 심으리라. 23 이스라엘의 드높은 산 위에 그것을 심어 놓으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으며 훌륭한 향백나무가 되리라.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이 그 가지 그늘에 깃들이리라. 24 그제야 들의 모든 나무가 알게 되리라.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며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시든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이가 나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
+ First Reading, Ezekiel 17:22-24
22 Thus says the Lord GOD: I, too, will take from the crest of the cedar, from its topmost branches tear off a tender shoot, and plant it on a high and lofty mountain; 23 on the mountain heights of Israel I will plant it.It shall put forth branches and bear fruit, and become a majestic cedar. Birds of every kind shall dwell beneath it, every winged thing in the shade of its boughs. 24 And all the trees of the field shall know that I, the LORD, bring low the high tree, lift high the lowly tree, wither up the green tree, and make the withered tree bloom. As I, the LORD, have spoken, so will I do.
+ 2 코린토 5,6-10
< 함께 살든지 떠나 살든지 우리는 주님 마음에 들고자 애를 씁니다. >
해설)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든지 육체를 떠나서 주님 곁에 가 있든지 오직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소망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최후의 심판 날에는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한 일들이 낱낱이 드러나서 잘한 일들은 상을 받고 잘못한 일들은 벌을 받을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6 우리가 이 몸 안에 사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7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8 우리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몸을 떠나 주님 곁에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9 그러므로 함께 살든지 떠나 살든지 우리는 주님 마음에 들고자 애를 씁니다. 10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저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몸으로 한 일에 따라 갚음을 받게 됩니다.
+ Second Reading, 2 Corinthians 5:6-10
Brothers and sisters: 6 We are always courageous, although we know that while we are at home in the body we are away from the Lord, 7 for we walk by faith, not by sight. 8 Yet we are courageous, and we would rather leave the body and go home to the Lord. 9 Therefore, we aspire to please him, whether we are at home or away. 10 For we must all appear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so that each may receive recompense,according to what he did in the body, whether good or evil.
+ 마르코 4,26-34
< 어떤 씨앗보다도 작으나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 >
해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 놓았는데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것이 자라는지 모릅니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낟알이 맺힙니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낫을 댑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6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Mark 4:26-34
Jesus said to the crowds: 26 “This is how it is with the kingdom of God;it is as if a man were to scatter seed on the land 27 and would sleep and rise night and day and through it all the seed would sprout and grow, he knows not how. 28 Of its own accord the land yields fruit, first the blade, then the ear, then the full grain in the ear. 29 And when the grain is ripe, he wields the sickle at once, for the harvest has come.” 30 He said, “To what shall we compare the kingdom of God, or what parable can we use for it? 31 It is like a mustard seed that, when it is sown in the ground, is the smallest of all the seeds on the earth. 32 But once it is sown, it springs up and becomes the largest of plants and puts forth large branches, so that the birds of the sky can dwell in its shade.” 33 With many such parables he spoke the word to them as they were able to understand it. 34 Without parables he did not speak to them, but to his own disciples he explained everything in private.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은 것이지만 심어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를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이나 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처음에는 미미하게 시작하지만 종말에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2018년 06월 17일 일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Unchained Melody | Piano Violin | Roy & Rosemary
저절로 자라는 씨앗과 겨자씨의 비유
+ 마르코 4,26-34
1.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하신다는 의미입니까? 씨앗의 싹을 틔우고 자라나서 열매 맺게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지만, 우선적으로 내가 해야 할 것은 씨 뿌리고 돌보는 일이 아닐까요? 나는 하느님이 하셔야 할 부분까지도 내 의지를 앞세운 적은 없습니까? 내가 계획을 세우고 나의 노력으로 이루었다 생각했지만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서 모든 것을 이루셨음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까?
2. 작고 보잘것없는 것도 다 쓰임새에 따라 하느님 안에서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작은 겨자씨 같은 믿음도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삶을 살 때 큰 믿음으로 자라납니다. 하느님께서는 내 마음 안에 어떤 씨앗을 심어 놓으셨습니까? 나의 삶이 하느님과 함께할 때 나의 믿음도 자라나는 것을 느낍니까? 과거와 비교해 나의 믿음은 얼마나 성장했습니까? 나는 풍성한 영적 열매를 맺기 위해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Today’s Reflection :
Sunday 17: Eleventh Sunday in Ordinary Time
1st Reading : Ezekiel 17:22-24
2nd Reading : 2 Corinthians 5:6-10
Gospel: Mark 4:26-34
Parable of mustard seed
In our first reading from the prophet Ezekiel we see the Lord likening his presence and his Kingdom to a noble cedar tree. The twig which is taken from the cedar tree and planted on the mountain is a future king from the line of David while the other trees, which are humbled, represent the surrounding kings. The birds and other creatures who come to shelter by it represent the people of God who will find protection and fulfilment in their worship of him and in following his law.
In the gospel, Jesus uses similar imagery to show that the Kingdom grows quietly but constantly and provides shelter and support to all who come to it. The first parable speaks about a man who sows seed and which grows without his understanding. It yields a good harvest and the man wastes no time in gathering it in. The second parable refers to the mustard seed which is very small in comparison to the resulting shrub, and in which birds find shelter and shade. Both parables refer to the growth of the Kingdom which takes place silently but constantly. In that Kingdom, all people have a place and all can find support and shelter within it. Entry to that Kingdom i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hrough acceptance of his Gospel, and by living lives worthy of God. The seed of faith has been sown in each of us and if we are open to that faith then we too will produce a great harvest of good works which will help us to enter the Kingdom.
In the second reading, St Paul regards this current, physical life as being an exile from the Lord – only when people leave this life can they become one with the Lord. Whether they are in this life or the next, the goal of every Christian should be to do his will, and only by doing his will in this life can they attain union with him in the next. No matter what people do in this life, it will all come out in the ‘law court of Christ’, and so each person should live as best they can in keeping with the Gospel.
Prayer :
"Lord, fill me with your Holy Spirit and transform me into the Christ-like holiness you desire. Increase my zeal for your kingdom and instill in me a holy desire to live for your greater glory." - Amen.
성 알베르토 슈미엘로프스키 (St. Albert Chmielowski)
축 일 : 6월 17일
신 분 : 수사, 설립자
활동지역 : 크라쿠프(Krakow)
활동년도 : 1845-1916년
같은이름 : 알버트, 알베르또, 알베르뚜스, 알베르투스, 앨버트, 흐미엘로프스키, 흐미엘롭스끼
1845년 8월 20일 폴란드 이고알로미아(Igoalomia)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알베르투스 아담 슈미엘로프스키(Albertus Adam Chmielowski, 또는 알베르토 슈미엘로프스키)는 가족 소유의 부동산 관리를 위해 농업을 공부하였다. 젊어서부터 정치에 관여했고, 17세 때에는 폭도들과 싸우다가 다리를 잃었다. 크라쿠프에서 그는 인기 있고 잘 알려진 형편이 좋은 예술가였다. 정치와 예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인식을 갖게 해주었다. 온화하고 열정적인 영혼의 소유자였던 그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것에 대한 소명을 느꼈다. 그는 몇 년간의 반성을 통해 이 원의가 하느님께서 봉사에로 부르시는 성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작은 형제회 제3회에 들어가 알베르투스라는 이름을 받았다. 예술을 그만둔 그는 크라쿠프에서 극빈자들을 위한 삶을 시작했다. 1887년 그는 설립자의 이름을 따서 알베르토회 또는 그들의 거친 회색 의상으로 인해 회색 형제회로도 알려진 가난한 이들의 종인 작은 형제회 제3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891년에 여자 제3회(회색 자매회)를 설립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과 집이 없는 이들을 위해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였다.
성 알베르투스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재앙은 불쌍한 형제자매들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가진 이’들이 ‘가지지 못한 이’들을 무시하고 그들로부터 떨어져 지내며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보살피도록 방치했다고 비판하였다. 훗날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가 된 카롤 보이티야(Karol Wojtyla)는 1949년에 성 알베르투스에 관한 유명한 연극의 대본을 썼는데 1997년에 ‘우리 하느님의 형제’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1916년 12월 25일 폴란드의 크라쿠프에서 선종한 그는 1983년 6월 2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크라쿠프에서 복자품을 받았고, 이어 1989년 11월 12일 같은 교황에 의해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홈
매일미사_2018년 06월17일(녹) 연중 제1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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