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6일(녹)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Saturday of the Tenth Week in Ordinary Time
+ 1열왕기 19, 19-21
< 엘리사는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섰다. >
해설) 주님께서 엘리사에게 기름 부어 엘리야의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우게 하십니다. 엘리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엘리사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자신의 겉옷을 걸쳐 줌으로써 자신을 따르게 합니다. 겉옷을 엘리사에게 걸쳐 주는 것은 주님의 예언자로서의 권위와 능력을 엘리사에게 넘겨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무렵 엘리야는 산에서 내려와 19 길을 가다가 사팟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열두 번째 겨릿소는 그 자신이 부리고 있었다. 그때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 20 그러자 엘리사는 소를 그냥 두고 엘리야에게 달려와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다녀오너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 21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 그런 다음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서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
+ First Reading, 1 Kings 19:19-21
19 Elijah set out, and came upon Elisha, son of Shaphat, as he was plowing with twelve yoke of oxen; he was following the twelfth. Elijah went over to him and threw his cloak over him. 20 Elisha left the oxen, ran after Elijah, and said, "Please, let me kiss my father and mother goodbye, and I will follow you." Elijah answered, "Go back! Have I done anything to you?" 21 Elisha left him and, taking the yoke of oxen, slaughtered them; he used the plowing equipment for fuel to boil their flesh, and gave it to his people to eat. Then he left and followed Elijah as his attendant.
묵상) 엘리사의 마지막 행위, 즉 자신을 위해 쓰던 쟁기를 부수고 황소 두 마리를 잡아 사람들을 대접하는 행위는 주님의 예언자 엘리야를 따르기 위해 자신의 생업까지도 포기하는 결단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제자들을 부를 때 제자들은 즉시 '그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 마태오 5, 33-37
<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
해설)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야 하며,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 맹세는 아예 하지 말아야 하며 혹시 맹세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맹세 따위는 하지 말고 오직 바른 말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37 너희는 말할 때에 ‘예.’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Matthew 5:33-37
Jesus said to his disciples: : 33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to your ancestors, Do not take a false oath, but make good to the Lord all that you vow. 34 But I say to you, do not swear at all; not by heaven, for it is God's throne; 35 nor by the earth, for it is his footstool; nor by Jerusalem, for it is the city of the great King. 36 Do not swear by your head, for you cannot make a single hair white or black. 37 Let your 'Yes' mean 'Yes,' and your 'No' mean 'No.' Anything more is from the Evil One."
묵상) 곧 다가 올 하느님의 나라, 아니 이미 온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단순히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그만입니다. 맹세 할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있는 사실 그대로만 말하면 그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헛된 맹세나 거짓 맹세를 물리치고 절대 진실만을 요구하십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통한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합니다. 말로만 대답하거나 맹세도 하지 않습니다. 즉시 세상일을 정리하고 주님의 일을 시작합니다. 말은 이유나 핑계나 변명일 수 있습니다. 많은 말보다 침묵이 오히려 더 큰 메시지를 주기도 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즉각적인 응답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2018년 06월 16일 토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Bridge Over Troubled Water - Simon and Garfunkel feat. Tim Foust
극기하여라 /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
+ 마태오 5, 27-32
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왜 거짓 맹세나 헛된 맹세에 대해 단호하게 말씀하십니까? 나는 어떤 상황이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거짓으로 맹세하거나 증언한 적은 없었습니까? 나는 '예'와 '아니요'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2. 내가 속해있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 나는 언제 사람들의 거짓 맹세나 증언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들었을 때 나의 감정은 어떻게 움직였습니까? 내가 한 헛된 맹세나 거짓 맹세가 있다면 정직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어떤 감정을 느끼셨을까요?
Saturday of the Tenth Week in Ordinary Time
1st Reading : 1 Kings 19:19-21
Gospel : Matthew 5:33-37
Teaching about oaths
In our first reading from the first Book of the Kings we see Elijah travelling to central Palestine in search of Elisha who has been marked out by God as Elijah’s successor. When he sees him, Elijah places his cloak over Elisha who understands this as being the call of God to serve him. Without hesitation, Elisha bids farewell to his family and his former life and becomes the servant of the one true God.
In today’s Gospel, Christ tells us that if we live truly Christian lives then there will be no need to swear oaths in order for others to believe us. If we are Christian then we will always live by the truth and others will recognise this in us. We are called upon to become servants of God just as Elisha became one and to always live in honesty and uprightness.
Prayer "Set a watch, Lord, upon my tongue, that I may never speak the cruel word which is not true; or being true, is not the whole truth; or being wholly true, is merciless; for the love of Jesus Christ our Lord.” - Amen
성녀 루갈다 (Saint Lutgardis)
축 일 : 6월 16일
신 분 : 수녀, 신비가
활동지역 : 에비에르(Aywieres)
활동년도 : 1182-1246년
같은이름 : 누갈다, 누갈따, 루갈따, 루트가르다, 루트가르디스, 룻가르다, 룻가르디스
성녀 루트가르디스(또는 루갈다)는 1182년 네덜란드 브라반트(Brabant, 오늘날에는 벨기에의 주) 지방의 통그레스(Tongres, 오늘날 림부르흐 지방의 통게렌 Tongeren)에서 부유한 부모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한 귀족 청년과 혼인하기로 하였으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지참금을 마련할 수 없게 되자 파혼을 당하였다. 그래서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12살의 나이에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생트롱(Saint Trond) 부근 성녀 카타리나(Catharina)의 검은 베네딕토 수도회(Black Benedictine convent of Saint Catherine)로 보내졌다. 수도생활에 특별한 성소가 있지 않았지만, 지참금이 없다는 사실은 적당한 남편을 찾는 희망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옷과 천진난만한 즐거움을 좋아하던 아리따운 소녀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경험한 뒤 자신의 삶의 행로를 바꾸게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놀고 있는 동안 나타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상처를 그녀에게 보여주시고 당신만을 사랑할 수 있는지를 물으셨다. 그녀는 즉시 예수님을 자신의 신랑으로 맞이했고 20살이 되는 해에 베네딕토회의 수녀가 되었다. 성녀 루트가르디스의 많은 자매들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열정이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커지기만 했다.
성녀 루트가르디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현존은 너무나 생생했기 때문에 기도를 시작하면 육신의 눈으로 보듯이 예수님을 보았다. 어떤 일이 주어지면 “주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일을 끝내자마자 다시 돌아올게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 후 12년 동안 다수의 환상을 경험하였고, 그 환상을 통해 주님과 성모님 그리고 다수의 성인들을 뵙게 되었다. 공중부양을 하기도 하였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할 때엔 이마와 머리에서 피가 맺혀 흐르기도 했다.
성녀 카타리나 수도회의 수녀들이 그녀를 수녀원장으로 추대하고 싶었지만,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1208년 그 수도회를 떠나 더 엄격한 규칙이 있는 곳을 찾아 브뤼셀(Brussel) 근처 에비에르에 있는 시토회 수도원에 들어갔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수도원을 선호했을 법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고해사제와 당시 성 카타리나 수도원 근처에 살고 있던 친구 성녀 크리스티나(Christina)의 권고를 받아들여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수도원에 들어간 것이다. 이는 훗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수도원에서 그녀가 프랑스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수녀원장직을 피하는 좋은 핑계가 되었다.
그곳에서 오직 빵과 물로만 지내며 극기 생활을 하던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당시 기승을 부리던 알비파 이단을 위한 보속으로 7년 동안 3번이나 대재를 지켰다. 또 그녀는 에비에르 수도원에서 30년을 살며 영적 슬기로움으로 명성을 떨쳤다.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치유와 예언의 은사를 주셨으며 성서의 의미에 대한 지식을 주입시켜 주셨다. 불완전한 프랑스어에도 불구하고 영적 지도에 있어서 크나큰 업적을 이뤘다.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특히 기도에 열중하였는데, 그녀의 기도는 신비롭게 이루어지는 일이 많았다. 그중의 한 예가 동정심이 없던 한 수도원 원장이 죽자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그가 천국에 들지 못할 것을 걱정하여 그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였는데, 어느 날 수도원장이 나타나 그녀의 기도 덕분으로 연옥의 고통을 크게 덜게 되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라진 일이 있었다. 또한 예수님은 당신의 심장을 가리키는 모습으로 자주 루트가르디스 성녀에게 발현하였는데, 예수님의 수난은 성녀의 수도 생활의 핵심이었다.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1235년부터는 시력을 완전히 잃어 생애의 마지막 11년을 맹인으로 지내야 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가시적인 세계에서 자신을 떼어놓고자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기쁜 선물로 생각하며 고통을 참아냈다.
예수님께서는 성녀 루트가르디스에게 나타나셔서 언제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다. 그렇게 받은 선물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후 죄인의 회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느님을 영원히 마주 뵈올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하였다. 성녀 루트가르디스는 자신이 예언한대로 1246년 6월 16일 삼위일체 대축일 저녁기도가 끝나고 대축일 끝기도가 시작되려는 시간에 64세로 선종하였다.
성녀 루트가르디스의 일생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가치관에 큰 징표를 남겨 죽 있다.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받음을 기뻐하며 내 육신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 수난의 부족한 것을 마저 채웁니다”(골로 1,24). 그녀는 12-13세기의 뛰어난 신비가 중 한 명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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