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월16일(자) 사순 제4주간 금요일
Friday of the Fourth Week of Lent
+ 지혜서 2, 1ㄱ. 12-22
<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해설) 구약성경 중에 제일 마지막으로 쓰인 지혜서는 주전 5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희랍어로 집필됩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헬레니즘의 문화에 접하여 신앙에 큰 위협을 받습니다. 인생은 잠깐 사이에 지나가기에 현세에서 온갖 쾌락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희랍사상에 대해 지혜서의 저자는 이스라엘 전통 사상을 후세들에게 전합니다.
악인들은 1 옳지 못한 생각으로 저희끼리 이렇게 말한다. 12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13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14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 15 정녕 그의 삶은 다른 이들과 다르고 그의 길은 유별나기만 하다. 16 그는 우리를 상스러운 자로 여기고 우리의 길을 부정한 것인 양 피한다. 의인들의 종말이 행복하다고 큰소리치고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17 그의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 18 의인이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19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을 것이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 자기 말로 하느님께서 돌보신다고 하니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21 이렇게 생각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그들의 악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다. 22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흠 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 First Reading, Wisdom 2:1a, 12-22
1 The wicked said among themselves, thinking not aright: 12 "Let us beset the just one, because he is obnoxious to us; he sets himself against our doings, Reproaches us for transgressions of the law and charges us with violations of our training. 13 He professes to have knowledge of Godand styles himself a child of the LORD. 14 To us he is the censure of our thoughts; merely to see him is a hardship for us, 15 Because his life is not like that of others, and different are his ways. 16 He judges us debased; he holds aloof from our paths as from things impure. He calls blest the destiny of the just and boasts that God is his Father. 17 Let us see whether his words be true;let us find out what will happen to him. 18 For if the just one be the son of God, he will defend him and deliver him from the hand of his foes. 19 With revilement and torture let us put him to the test that we may have proof of his gentleness and try his patience. 20 Let us condemn him to a shameful death; for according to his own words, God will take care of him." 21 These were their thoughts, but they erred; for their wickedness blinded them, 22 and they knew not the hidden counsels of God; neither did they count on a recompense of holiness nor discern the innocent souls' reward.
묵상)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악행을 저지르게 되고 그래서 악인이 됩니다. 바른 판단은 지혜로부터 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올바른 말과 올바른 행동을 하게 되고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합니다. 의인은 주님의 오묘한 뜻을 알며 거룩한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악인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가짜로만 보입니다.
+ 요한 7, 1-2. 10. 25-30
<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
해설) 유다인들의 관심은 예수님의 정체성입니다. 예수님의 신원이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메시아일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입니다. 메시아 기준에 어긋나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시기로 된 그 메시아'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외형적으로만 알고 있고 예수님의 신원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2 마침 유다인들의 초막절이 가까웠다. 10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25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26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7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2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29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30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John 7:1-2, 10, 25-30
Jesus moved about within Galilee; he did not wish to travel in Judea, because the Jews were trying to kill him. 2 But the Jewish feast of Tabernacles was near. 10 But when his brothers had gone up to the feast, he himself also went up, not openly but as it were in secret. 25 Some of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said, "Is he not the one they are trying to kill? 26 And look, he is speaking openly and they say nothing to him. Could the authorities have realized that he is the Christ? 27 But we know where he is from. When the Christ comes, no one will know where he is from." 28 So Jesus cried out in the temple area as he was teaching and said, "You know me and also know where I am from. Yet I did not come on my own, but the one who sent me, whom you do not know, is true. 29 I know him, because I am from him, and he sent me." 30 So they tried to arrest him, but no one laid a hand upon him, because his hour had not yet come.
묵상) 사랑이 없는 사람은 사랑 자체이신 주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느님도 알지 못하고 예수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참된 자아도 알지 못합니다.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을 부정하고, 그래서 하느님을 부정하고 예수님도 믿지 않습니다.
진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을 알지 못하며, 사랑이 없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며,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은 결국 자신을 부정하고 하느님도 부정하고 예수님도 믿지 않습니다.
2018년 03월 16일 금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마르타수녀의 피아노스케치] [연주] 가톨릭성가25장 사랑의 하느님
예수님의 형제들이 믿지않다. / 저분이 그리스도 이신가
+ 요한 7, 1-2. 10. 25-30
1. 그들이 믿고 기다리는 메시아는 누구입니까? 왜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믿지 않았습니까? 그들을 불신하게 만드는 요소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들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까? 왜 예수님께 손을 델 수 없었습니까?
2. 나도 혹시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을 함부로 속단한 적은 없었습니까? 나는 예수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아직도 예수님을 따르는데 주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나의 구원자 메시아로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면 그 방해 요소가 어디서 시작되고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Today’s Reflection :
Friday of the Fourth Week of Lent
Wisdom 2:1, 12-22 / John 7:1-2, 10, 25-30
The reading from the Book of Wisdom is prophetic in that it speaks of the death of the virtuous man – which we can understand as being the death of Jesus. Everything that is said in it speaks of Jesus and how the people did not wish to follow him because his way was different and challenging and he pointed out their sins and transgressions.
The gospel continues this story and we see that some of the people have decided to be rid of Jesus. Jesus tells us that he came not for himself but for God and for his people. He came not just to tell us about God but to show us God. We too should make every effort to get to know God personally and not just talk about him.
Prayer :
"Eternal God, who are the light of the minds that know you, the joy of the hearts that love you, and the strength of the wills that serve you; grant us so to know you, that we may truly love you, and so to love you that we may fully serve you, whom to serve is perfect freedom, in Jesus Christ our Lord.” - Amen.
성녀 에우세비아 (St. Eusebia)
축 일 : 03월 16일
신 분 : 수녀원장
활동지역 : 아마예(Hamaye)
활동년도 : 627-680년
같은이름 : 에우쎄비아
성녀 에우세비아는 오스트레반트(Ostrevant)의 성 아달발두스(Adalbaldus, 2월 2일)와 성녀 릭트루다(Rictrudis, 5월 12일)의 딸이다. 남편이 살해된 뒤 성녀 릭트루다는 두 딸과 함께 마르시엔(Marcienne) 수도원으로 은거하였다. 이때 그녀는 맏딸 에우세비아를 아마예 수도원으로 보내어 그녀의 시할머니인 성녀 제르트루다(Gertrudis, 12월 6일)의 지도를 받게 하였다. 성녀 제르트루다가 사망했을 때 성녀 에우세비아는 불과 12살이었지만 성녀의 대를 이어 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 당시에 어쩔 수 없는 관습 중의 하나였다. 왜냐하면 막강한 집안의 사람을 원장으로 세움으로써 내외적으로 안정과 도움을 받으려는 자구책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녀 에우세비아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덕이 출중해져 주위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다. 젊은 원장이지만 매우 현명하게 처신하였고, 성녀 제르트루다 시대처럼 수도원 규칙을 다시 손보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사실 그녀가 죽은 후에도 수도원 내부 문제에는 아무런 요동이 없을 정도로 거의 완벽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몇 명의 지혜로운 수녀들과 함께 수녀원을 운영하면서 평화롭게 수도생활을 하다가 680년 3월 16일에 사망하였다. 성녀 에우세비아의 사망 연도를 660년이나 670년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녀는 “지금 온 방안에 큰 빛이 퍼지고 있다”고 말한 즉시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
그녀는 잘 알고 있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 9월 27일)를 찾았다. 그 당시에 성인은 ‘애덕회’를 조직하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빈첸시오 성인은 성녀 루도비카의 소망을 받아들여 ‘애덕의 수녀회’를 설립하여 초대원장으로 루도비카를 임명하였다. 이 수녀회가 오늘날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라고 불리는 수녀회이다. 그때부터 그들의 수도원은 병원이요 성당은 교구의 모든 성당이며 봉쇄 구역은 길거리가 되었다. 회칙 초안도 그녀가 작성하였다. 그녀의 명석한 두뇌와 관대한 사랑은 이 수녀회의 급속한 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1660년 3월 15일 성녀 루도비카가 파리에서 임종할 때 프랑스 내에는 이미 40개의 수도원이 있었고, 병자와 가난한 이를 돕는 구호소는 수없이 많았다.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봉사하라.…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말 것이다. 그대가 섬기는 이는 곧 그리스도이시니…” 그녀는 1920년 5월 9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4년 3월 11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60년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사회복지사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출처 : 가톨릭 홈
매일미사_2018년 03월16일(자) 사순 제4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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