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03일(녹)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Tuesday of the Twenty-sixth Week in Ordinary Time
+ 즈카르야 8, 20-23
< 많은 민족들이 주님을 찾으러 예루살렘에 오리라. >
해설) 새 날이 오면 만군의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평화를 심어주실 것입니다. 새 날이 오면 주님의 축복이 넘쳐흘러 땅은 많은 소출을 낼 것입니다. 그리하여 살아 있는 하느님 백성은 이 모든 것을 받아 풍요롭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많은 민족과 여러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주님 앞으로 모여들 것입니다.
20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민족들과 많은 성읍의 주민들이 오리라. 21 한 성읍의 주민들이 다른 성읍으로 가서 “자, 가서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고 만군의 주님을 찾자. 나도 가겠다.” 하고 말하리라. 22 많은 민족들과 강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에서 만군의 주님을 찾고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러 오리라. 23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그때에 저마다 말이 다른 민족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 First Reading, Zechariah 8:20-23
20 Thus says the LORD of hosts: There shall yet come peoples, the inhabitants of many cities; 21 and the inhabitants of one city shall approach those of another, and say, "Come! let us go to implore the favor of the LORD"; and, "I too will go to seek the LORD." 22 Many peoples and strong nations shall come to seek the LORD of hosts in Jerusalem and to implore the favor of the LORD. 23 Thus says the LORD of hosts: In those days ten men of every nationality, speaking different tongues, shall take hold, yes, take hold of every Jew by the edge of his garment and say, "Let us go with you, for we have heard that God is with you."
묵상) 주님의 새 날이 오면 많은 민족과 여러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주님 앞으로 모여들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모든 민족과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만군의 주님을 찾아와 주님의 자비를 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 있는 주님께서는 당신을 찾는 백성에게 하늘의 축복을 풍요롭게 내리실 것입니다.
+ 루카 9, 51-56
<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해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완수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십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구원 사업이 완성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대장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Luke 9:51-56
51 When the days for Jesus to be taken up were fulfilled, he resolutely determined to journey to Jerusalem, 52 and he sent messengers ahead of him. On the way they entered a Samaritan village to prepare for his reception there, 53 but they would not welcome him because the destination of his journey was Jerusalem. 54 When the disciples James and John saw this they asked, "Lord, do you want us to call down fire from heaven to consume them?" 55 Jesus turned and rebuked them, and they journeyed to another village.
묵상)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완성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기들을 구원하시는 주님 사랑의 길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의 구원 사업이 완성된 후에야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집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 세상에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실 때도 심부름꾼을 앞서 보내 준비를 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위한 귀한 사명을 받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알고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2017년 10월 03일 화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거룩한 성 - 국립합창단
예수님의 참가족
+ 루카 8, 19-21
1. 사마리아인들은 왜 예수님을 거부하였습니까? 왜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으십니까?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 속에서 어떤 교만을 볼 수 있습니까?
2. 나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야고보와 요한처럼 교만이 앞서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말로써 죄를 짓지는 않았습니까?
Today’s Reflection :
Zechariah 8:20-23 / Luke 9:51-56
In the first reading we see that when the Lord has rebuilt Jerusalem the renown of the city as the dwelling place of God will spread far and wide. On that day people from other nations and creeds will seek the city to draw close to the Lord. This is about the year 520 BC and is an encouragement to those who are rebuilding the Temple to continue in their work.
In the Gospel, Jesus now turns resolutely towards Jerusalem and his impending death. On the way some people and villages do not accept him and the disciples want to destroy them but Jesus stops them. This is a reminder that nobody will be forced to believe in Christ or in his way. It is for each man and woman to make up their own mind and to follow their own path in life. The first reading puts it before us that if we are truly living Christian lives and giving a perfect example to our fellow men and women then they will come to us and ask us to lead them to the Lord. However, unless we give the example they will never see the path to salvation.
Prayer :
"Heavenly Father, keep my mind fixed on the surpassing joys stored up for me in your kingdom. And let me be willing to put up with all the suffering, hardship, and pain that may come my way in serving you.". Amen.
성녀 테오도라 게랭(Saint Theodore Guerin)
축 일 : 10월 03일
신 분 : 수녀원장, 설립자
활동지역 :
활동년도 : 1798–1856년
같은이름 : 게렝, 구에린, 데오도라, 데오도로, 데오도루스, 떼오도라, 떼오도로, 떼오도루스, 테오도로, 테오도루스
성녀 테오도라 게랭(Theodora Guerin)은 1798년 10월 2일 프랑스 서쪽 브르타뉴(Bretagne) 반도의 이타블리 쉬르 메르(Etables-sur-Mer)라는 마을에서 안느-테레즈 게랭(Anne-Therese Guerin)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휘하에서 해군 장교로 근무한 로랑 게랭(Laurent Guerin)과 르페브르(Lefevre) 가문 출신의 이자벨 게랭(Isabelle Guerin)이었다. 안느-테레즈가 태어난 때는 프랑스 혁명(1789-1794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혁명의 여파로 프랑스는 갈가리 찢어졌고, 학교와 성당들이 강제로 문을 닫고 사제들이 추방되거나 단두대에서 희생됨으로써 가톨릭 교회 또한 위기에 봉착한 시대였다.
로랑과 이자벨은 네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안느-테레즈와 마리-잔느(Marie-Jeanne)만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안느-테레즈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과 가톨릭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10살 때 첫영성체를 허락받았는데, 당시 본당신부는 그녀가 언젠가는 수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안느-테레즈는 종종 집 근처의 해안가 바위에서 홀로 오랜 시간 동안 묵상과 반성 그리고 기도에 열중하는 모습으로 발견되곤 하였다. 아버지 로랑이 나폴레옹의 해군에 복무하며 몇 년 동안 집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자녀들의 교육은 주로 어머니 이자벨에 의해 집에서 이루어졌다. 이자벨은 신앙과 성경을 중심으로 자녀들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안느-테레즈가 15살 때 아버지가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 집으로 오다가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남편을 잃고 큰 충격을 받은 어머니를 위해 안느-테레즈는 여러 해 동안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돌보는 책임뿐만 아니라 가사와 정원일까지도 감당해야 했다. 이런 고난과 희생을 겪으면서도 그녀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
25살 무렵에 안느-테레즈는 루이에 쉬르 루아르(Ruille-sur-Loir)의 천주 섭리의 수녀회에 입회하여 테오도라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이 수녀회는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을 돌봄으로써 하느님을 섬기는 젊은 수녀 공동체였다. 그녀는 1825년 9월 8일 첫 서원을 하고 이어서 1831년 9월 5일에 종신서원을 발했다. 수련기 중에 테오도라 수녀는 프랑스 중부의 프레이이 쉬르 클레즈(Preuilly-sur-Claise)로 파견되었는데, 그곳에서 천연두로 추정되는 병에 걸려 거의 죽을 뻔하였다. 다행히 병은 나았지만 소화 계통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평생을 부드러운 음식과 액체만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 후 테오도라 수녀는 렌(Rennes)의 생토뱅(Saint-Aubin) 본당 학교와 앙제(Angers) 교구의 술렌느(Soulaines)에서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고 교육하였다. 이 기간 중에 그녀는 앙제 학술원의 장학사로부터 교육적 공로에 대한 훈장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에서의 활동에 이어 테오도라 수녀는 일단의 수녀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아나(Indiana) 주(洲)의 빈세네스(Vincennes) 교구에서 학교를 설립하고 개척자들과 함께 하느님을 사랑을 나누기 위해 수녀원의 미국 모원을 설치할 책임자로 사명을 부여받았다. 겸손하며 자신의 능력을 한없이 부족하게 느꼈던 테오도라 수녀는 자신이 수행하기에는 너무 벅찬 사명으로 생각했다. 또한 자신의 허약한 육체적 조건 역시 수녀원의 요청을 수락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오도라 수녀는 오랜 기도와 원장수녀와의 대화를 통해 결국 새로운 소명을 받아들였다. 만약 자신이 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황무지로 떠나는 모험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마음에서 두려움을 안고 수용한 것이다.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한 테오도라 원장수녀와 다섯 명의 동료 수녀들은 프랑스를 떠나 1840년 10월 22일 저녁 미국 인디아나 주의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Saint Mary-of-the-Woods)에 도착했다. 새로운 사명의 땅에 도착한 그들은 즉시 진흙탕과 좁은 길을 따라 성당으로 사용할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에 무사히 도착하여 안전한 여행에 감사하며 새로운 사명을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는 미사를 봉헌하기에 앞서 무릎 꿇고 기도를 바쳤다. 깊은 숲속 산골짜기 협곡에 위치한 구릉지에 테오도라 원장은 모원과 학교를 설립하였고, 그들이 남긴 사랑과 자비와 정의의 유산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슬픔과 평화의 시간을 보내면서 테오도라 원장은 하느님의 섭리에 굳게 의지하며 현명하게 수녀들을 이끌었다. 그녀는 수녀들에게 “하느님의 손길에 부드럽게 자신을 맡기라”고 강조하였고, 프랑스로 보내는 편지에서도 “우리의 희망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고, 하느님의 섭리는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었고, 우리의 미래에 필요한 것을 어떻게든 마련해 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테오도라 수녀 일행이 도착한 1840년 가을,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의 현실은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 성당과 사제를 위한 숙소 그리고 작은 규모의 농장이 전부였다. 이곳에서 테오도라 원장 수녀는 프랑스에서 함께 온 수녀들과 다른 몇 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살았다. 처음 맞이한 겨울 내내 북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작은 농장을 뒤흔들었고, 수녀들은 종종 추위와 굶주림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성당 입구를 변경해 보잘것없는 모원이지만 성체성사의 현존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녀는 “예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리오?”라고 말했다. 사실 사도직 초기에 수많은 시련들이 몰려왔었다. 가톨릭을 반대하는 편견, 특히 여성 수도자들에 대한 편견, 배신과 오해, 프랑스 본원과의 분리 작업, 참담한 화재로 모든 수확물을 잃고 곤궁함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때때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질병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테오도라 원장은 “모든 것 안에서 그리고 모든 곳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견디어냈다.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에 도착한 지 일 년이 못 되어 테오도라 원장은 수녀회의 첫 번째 학교를 개교하였고, 1842년 인디아나 주의 재스퍼(Jasper)와 일리노이(Illinois) 주의 세인트 프랜시스빌(St. Francisville)에도 학교를 열었다. 1856년 5월 14일 선종할 때까지 테오도라 원장은 인디아나 주 전역에 학교를 설립했고, 천주 섭리의 수녀회 또한 더 강한 생명력을 갖고 발전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테오도라 원장은 수녀회의 성장과 성공에 대해 항상 하느님과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공으로 돌렸다. 테오도라 원장의 성덕(聖德)은 그녀를 아는 사람들 안에서 명백히 드러났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성인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사람들 안에서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도록 가장 좋은 것을 끌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은 테오도라 원장수녀가 지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였다. 그녀는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천주 섭리의 수녀회 수녀들과 가톨릭 교회 그리고 그녀가 섬겼던 모든 사람들을 사랑했다. 또한 자신의 사도직과 기도로부터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아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데 일생을 바쳤다. 테오도라 원장은 그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시련과 고난 그리고 부당한 대우마저도 기회로 받아들였고, 괴로움의 한가운데서 진실하고 충실한 하느님의 여인으로 남았다. 테오도라 수녀는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에 도착한 후 16년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가 다음 세대에 물려준 선물은 성덕과 덕행, 사랑과 신앙의 모범으로서 그녀의 삶 자체였다. 테오도라 원장수녀는 1998년 10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6년 10월 15일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다른 세 명의 복자들과 함께 그를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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