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 주일(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Twenty-fourth Sunday in Ordinary Time
[안내] 오늘의 말씀 한국어판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내용이며 영문은 연중 24 주일 내용을 따릅니다. Today's word for Korean version celebrating Saint Andrew Kim Daegun the priest, and Saint Paul Jung Ha Sang and his fellow martyrs of Korea. English version is following Twenty fourth Sunday in Ordinary Time
증거 (Testify)
정미연 소화데레사, 순교자, 2015.9.20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순교는 증거를 뜻합니다. 주님의 진리를 위해 피로써 증거 하는 행위가 바로 순교입니다. 진리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하느님의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순교는 자기 목숨을 바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행위입니다.
제1독서는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본성대로 인간을 불멸하는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악마의 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마에게 편드는 자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악마에게 편드는 악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죽음의 세계로 떨어집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주님의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주님의 의인들은 불멸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받을 축복에 비하면 의인들이 현세에서 받는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의인들은 나라와 백성을 통치할 것이고 주님께서 영원무궁토록 그들의 왕으로 군림하시고 다스리실 것입니다.
제2독서는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는 그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힘입어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환난과 핍박과 굶주림과 헐벗음과 온갖 위험도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에서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시련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죽음도 생명도 다른 어떤 피조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어려움이나 박해나 순교나 어떤 형태의 지배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참 사랑은 세상의 모든 두려움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자기중심적 자아를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순교는 증거입니다. 순교는 진리를 위해 자기의 생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행위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께로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래서 참 그리스도인도 십자가의 길을 따라 하느님께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있고, 예수님의 말씀 안에 하느님의 진리가 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한 사람들입니다.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은 자신의 목숨 바쳐 하느님의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 사람들입니다.
+ 지혜서 3, 1-9
<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
해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 손 안에 있어 아무런 고통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눈에는 하느님의 의인들이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의인들은 하느님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의인들은 주님을 의지하고 진리를 깨달으며 주님을 믿고 그 사랑 안에서 삽니다.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 First Reading, Sirach 27:30—28:7
30 Wrath and anger are hateful things, yet the sinner hugs them tight. 28:1 The vengeful will suffer the LORD's vengeance, for he remembers their sins in detail. 2 Forgive your neighbor's injustice; then when you pray, your own sins will be forgiven. 3 Could anyone nourish anger against another and expect healing from the LORD? 4 Could anyone refuse mercy to another like himself, can he seek pardon for his own sins? 5 If one who is but flesh cherishes wrath, who will forgive his sins? 6 Remember your last days, set enmity aside; remember death and decay, and cease from sin! 7 Think of the commandments, hate not your neighbor; remember the Most High's covenant, and overlook faults.
+ 로마서 8, 31ㄴ-39
< 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해설) 주님을 사랑하는 의인들은 그분의 도움으로 모든 시련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죽음도 생명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의인들을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인들이 받는 고통은 후세에 받을 불멸의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Second Reading, Romans 14:7-9
Brothers and sisters: 7 None of us lives for oneself, and no one dies for oneself. 8 For if we live, we live for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for the Lord; so then, whether we live or die, we are the Lord's. 9 For this is why Christ died and came to life, that he might be Lord of both the dead and the living.
+ 루카 9, 23-26
<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해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수난 받으시고 죽으신 스승을 본받고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자기중심적 자아를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기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생명을 잃을 것이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제 목숨을 내어놓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사랑이신 성부 성자 성령 - 김옥순 수녀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Matthew 18:21-35
21 Peter approached Jesus and asked him, "Lord, if my brother sins against me, how often must I forgive? As many as seven times?" 22 Jesus answered, "I say to you, not seven times but seventy-seven times. 23 That is why the kingdom of heaven may be likened to a king who decided to settle accounts with his servants. 24 When he began the accounting, a debtor was brought before him who owed him a huge amount. 25 Since he had no way of paying it back, his master ordered him to be sold, along with his wife, his children, and all his property, in payment of the debt. 26 At that, the servant fell down, did him homage, and said, 'Be patient with me, and I will pay you back in full.' 27 Moved with compassion the master of that servant let him go and forgave him the loan. 28 When that servant had left, he found one of his fellow servants who owed him a much smaller amount. He seized him and started to choke him, demanding, 'Pay back what you owe.' 29 Falling to his knees, his fellow servant begged him, 'Be patient with me, and I will pay you back.' 30 But he refused. Instead, he had the fellow servant put in prison until he paid back the debt. 31 Now when his fellow servants saw what had happened, they were deeply disturbed, and went to their master and reported the whole affair. 32 His master summoned him and said to him, 'You wicked servant! I forgave you your entire debt because you begged me to. 33 Should you not have had pity on your fellow servant, as I had pity on you?' 34 Then in anger his master handed him over to the torturers until he should pay back the whole debt. 35 So will my heavenly Father do to you, unless each of you forgives your brother from your heart."
우리의 순교자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죽음으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주님의 거룩한 뜻을 알아차린 사람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오직 주님을 위한 삶을 살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2017년 09월 17일 일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Love Has A Name // Jesus Culture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 루카 9,23-26
1. 예수님의 말씀 중에 "자신을 버린다"는 것과 "자신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나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나의 '십자가'는 무엇이며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나의 십자가를 비교하며 바라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내 십자가를 통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2. 나는 살면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은 없습니까? 누가 볼까봐 숨어서 성호를 긋거나 소리죽여 기도한 적은 없습니까?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부끄럽나요? 순교자들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해 볼 때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생각하는 "하느님 나라"는 어떤 것입니까?
Today’s Reflection :
Ecclesiasticus 27:30-28:7 / Romans 14:7-9 / Matthew 18:21-35
Both the first reading and the gospel today speak of forgiveness and not simply as something nice and laudable but as a necessity. The first reading from Ecclesiasticus, from the Wisdom of Ben Sirach, opens by telling us that ‘resentment and anger … are foul things’ and that these have no place in our lives. Those who harbor resentment and anger, who track the sins of another, cannot come before the Lord and seek forgiveness because they themselves persist in sin.
In our gospel passage we have the parable of the wicked servant who – despite being pardoned by the king of his debt – refused to pardon a fellow servant who was in debt to him. St Peter had asked the Lord how often he had to forgive his brother and Jesus responded with a parable to demonstrate how far we must go in forgiving others. There is a reminder that if we are to expect forgiveness from God and from others then we ourselves must forgive those who we perceive to have wronged us, which reminds us of the Lord’s Prayer. The parable also tells us that we cannot abuse the mercy of God: just because we have been forgiven doesn’t give us licence to go and commit another act of wrong-doing. God does indeed love each of us but his love and mercy are not to be taken for granted or lightly. At the same time, the forgiveness we extend to others cannot be mere words but must be genuine and from the heart, which means that there can be no resentment but genuine love for the other. We are called on in both readings to remember the covenants with God who forgave humankind again and again, despite their sinful ways.
In our final section from his letter to the Christians of Rome, St Paul tells them that, as Christians, they no longer live for themselves but for God. Christians follow the example of Jesus who gave his life for them in obedience to the Father and so they, too, should live for the Father and for his will to be accomplished in the world. This is the case whether the faithful are alive or dead because, through his death and resurrection, Jesus is Lord of both.
Prayer :
Merciful Father, thank You for never tiring of forgiving us. Help us to extend the forgiveness we have received to someone who we need to forgive. Amen.
성녀 힐데가르트(Saint Hildegard)
축 일 : 9월 17일
신 분 : 수녀원장, 신비가, 교회학자
활동지역 : 빙엔(Bingen)
활동년도 : 1098-1179년
같은이름 : 힐데가르다, 힐데가르데, 힐데가르드, 힐데가르디스, 힐데가르타
독일 남서부 알자이(Alzey) 부근 작은 마을인 베르미스하임(Bermersheim)에서 귀족인 아버지 힐데베르트(Hildebert)의 10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is)는 어릴 때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8세 때 병약한 관계로 디지보덴베르크(Disibodenberg)에 있는 베네딕토 수녀회에 맡겨져, 스판하임의 메긴하르트(Meginhard von Spanheim) 백작의 동생인 유명한 은수자 유타(Juttta)의 보호하에 읽기와 쓰기, 찬미가 부르기, 수작업과 음악 등의 교육을 받았다. 성녀 힐데가르트는 12세 때부터 은수생활을 시작하였고, 14세 때에 수도 서약을 하였다.
1136년 유타가 세상을 떠나자 38세의 힐데가르트가 수녀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1141년 그녀의 마흔 세 번째 생일날,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면서 예언자적 소명을 받았다. 그녀는 처음에 이 체험을 거부하여 내적인 갈등으로 병석에 눕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스승이며 고해 신부에게 상담을 하였고, 마인츠(Mainz) 교구 대주교의 지시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그녀가 체험한 환시가 사실임을 확인한 후 그녀의 환시를 글로 기록하는 일을 돕도록 수도승인 폴마르(Volmar)를 임명하였다. 특히 성녀가 살던 시대는 서방 교회의 혼란기였기 때문에 그녀의 예언자적 소명이 더욱 큰 몫을 담당하게 되었다.
1148년 그녀는 빙엔의 루페르츠베르크(Rupertsberg)에 새로운 수녀원을 설립하고, 1150년 다른 수녀들을 데리고 디지보텐베르크 수도원을 떠나 그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에 첫 번째 저서인 "쉬비아스"(Scivias Domini)를 완성하자 그녀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녀는 계속해서 자연과 치료에 관한 책, "책임 있는 인간"(Liber Vitae Meritorum), "세계와 인간"(Liber divinorum operum) 등을 저술하였고, 1165년에는 라인 강 건너편 아이빙엔(Eibingen)에 두 번째 수녀원을 설립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환시를 설명하기 위해 독일 전역을 네 차례나 도는 설교 여행을 하였다. 그녀는 1179년 9월 17일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루페르츠베르크 수녀원에 묻혔다.
성녀 힐데가르트는 중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여성으로 손꼽히며, 다양한 방면의 연구를 통한 그녀의 저서는 단테(Dante)나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에 견줄만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공식적으로 시성된 사실은 없었다. 그러나 1664년부터 독일 마인츠 교구의 시간 전례서와 미사 경본에 9월 17일을 그녀의 축일로 기념하기 시작하였으며, 1940년부터 이 축일을 교황청에서도 받아들였다.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는 2012년 5월 10일 교황청 시성성의 시복시성 관련 교령을 승인하면서 성녀 힐데가르트를 성인 목록에 등록함으로써 공식적으로 그녀를 성인으로 선포했으며, 같은 해 10월 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제13차 세계 주교시노드 개막미사를 집전하면서 아빌라의 성 요한과 빙엔의 성녀 힐데가르트를 교회박사로 선포하였다.
출처 : 가톨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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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_2017년 9월17 주일(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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