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09일(자) 대림 제2주간 금요일
Friday of the Second Week in Advent
+ 이사야서 48,17-19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해설)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언약에 충실하시고 하느님 백성의 구원자로서 백성들을 위하여 늘 새롭게 활동하십니다. 만약에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약속을 어기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계획을 저버렸거나 그 계약을 어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18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9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 1st Reading, Isaiah 48:17-19
17 Thus says the LORD, your redeemer, the Holy One of Israel: I am the LORD, your God, teaching you how to prevail, leading you on the way you should go. 18 If only you would attend to my commandments, your peace would be like a river, your vindication like the waves of the sea, 19 Your descendants like the sand, the offspring of your loins like its grains, Their name never cut off or blotted out from my presence.
묵상) 주님을 바르게 섬기고 주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우리의 평화는 강물처럼 흘러넘치고 정의는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릴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주 하느님을 사랑하면 하느님의 축복으로 하느님의 참된 자녀들은 모래알처럼 많아질 것이고 그들의 이름은 하느님 앞에서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마태오 11,16-19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해설) 장터의 어린이들이 같이 놀자고 피리를 불어도 다른 아이들은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곡을 하였지만 여전히 그 아이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장터의 어린이들은 단지 놀이만을 망쳤을 뿐이지만,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하느님 구원의 기쁜 소식에 대부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Matthew 11:16-19
16“To what shall I compare this generation? It is like children who sit in marketplaces and call to one another, 17 ‘We played the flute for you, but you did not dance, we sang a dirge but you did not mourn.’ 18 For John came neither eating nor drinking, and they said, ‘He is possessed by a demon.’ 19 The Son of Man came eating and drinking and they said, ‘Look, he is a glutton and a drunkard, a friend of tax collectors and sinners.’ But wisdom is vindicated by her works.”
묵상) 유다인들은 세례자 요한이 아주 엄격한 생활을 하자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세례자 요한을 미쳤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먹고 마시고 논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참 사랑을 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이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길을 따라 걷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와 생명을 주시기 위해 계명을 주셨습니다. 계명은 우리를 주님께로 이끄시기 위해 주님께서 늘어놓은 디딤돌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예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명하며 사는 사람은 끝내 영원한 생명에 다다를 것입니다.
2016년 12월 09일 금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https://youtu
.be/0KB8yY_hs60
Luciano Pavaroti - Panis Angelicus
세례자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시다
+ 마태오 11,16-19
1. 나의 믿음은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삶 안에서 나는 얼마나 하느님을 믿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습니까? 나만 특별하고 나만 선택 받았으며 내가 제일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엇이 나를 착각하고 자만하도록 만듭니까? 참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2. 나는 열심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수고를 색안경 끼고 비판하거나 폄하한 적은 없습니까? 타인의 대한 나의 이런 이기적 마음은 어디로 부터 오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사랑이 부족하고 신앙의 눈이 어둡거나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교회에 나갈 때마다 내적 평화를 달라고 기도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바뀌지 않는 모습은 없었습니까?
성 후안 디에고(Saint Juan Diego)
축 일 : 12월 09일
신 분 : 농부
활동지역 : 쿠아우티틀란(Cuautlitlan)
활동년도 : 1474-1548년
같은이름 : 디다꼬, 디다꾸스, 디다코, 디다쿠스, 얀, 요안네스, 요한,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콰우틀라토아친, 쿠아우틀라토아친, 한스
성 요한 디다쿠스(Joannes Didacus, 또는 요한 디다코, 후안 디에고)는 1474년 오늘날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Mexico City)의 일부인 쿠아우티틀란에서 태어나 ‘독수리 같이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쿠아우틀라토아친(Cuauhtlatoatzin)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아나후악(Anahuac) 계곡에서 비교적 문화적으로 성숙한 치치메카족(Chichimeca)의 일원이었다. 평범한 농부였던 그는 50세경에 초기 멕시코 선교를 나온 작은 형제회 베드로 다 간드(Petrus da Gand) 신부로부터 요한 디다쿠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후 날이 갈수록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그는 에스파냐가 마야, 아즈텍 문명이 융성하던 멕시코를 정복한 지 꼭 10년 후인 1531년 12월 9일 멕시코시티 근방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의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테페약(Tepeyac) 산을 넘고 있었다. 그날따라 이른 새벽 가시덤불밖에 없던 산 정상에 신비한 기운이 감돌았는데 갑자기 찬란한 빛을 내는 구름 속에서 한 귀부인이 나타나 성 요한 디다쿠스를 불렀다. 그때 그 귀부인은 자신이 은총을 가득히 입은 하느님의 영원한 동정녀 마리아임을 밝히면서 그 장소에 성당을 세우라는 메시지를 주교에게 알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말을 전해들은 멕시코의 초대주교인 후안 데 수마라가(Juan de Zumarraga)는 그를 믿지 않았다.
성모님께서는 실망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성 요한 디다쿠스에게 다시 발현하시어 내일 주교에게 다시 가서 성당을 반드시 세울 것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주교는 성모님께서 표적을 보여 주신다면 기꺼이 성모님을 위한 성당을 세우겠다고 말하였다. 성 요한 디다쿠스가 이 말을 다시 성모님께 전하자 성모님께서는 징표로써 테페약 산 정상에 올라가서 장미를 주워 주교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때는 12월이라 추웠고 또 돌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산 정상에 가니 과연 장미꽃들이 있었고 이를 틸마(Tilma, 외투 또는 보자기로 쓰이는 겉옷, 망토)에 담아 주교에게 내보였다. 그 순간 주교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말았다. 겨울이라 장미꽃이 필 계절도 아니었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성 요한 디다쿠스의 틸마에 새겨진 그림 때문이었다. 바로 그 귀부인의 모습과 그 옷자락을 한 천사가 받들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 귀부인은 스스로 ‘과달루페(Guadalupe)의 영원하신 동정 마리아’로 불리기를 원하셨고, 그 성화는 테페약 산 정상에 세워진 성당에 모셔졌다. '과달루페'는 '뱀을 부순 여인'이라는 뜻이다.
그 후 성 요한 디다쿠스는 주교의 허락을 받고 성당 옆 작은 오두막집에 살면서 과달루페의 성모를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성화를 보여주면서 성모님의 발현 과정과 의미를 설명하였다. 매일 수천 명씩 개종하더니 마침내 발현 후 8년 만에 우상 숭배와 매년 2만 명 이상의 여자와 어린이들을 피의 제물로 '뱀신'에게 바치는 인신 제사에 빠져 있던 멕시코인 900만 명이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선교사의 활동만으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1709년 4월 27일 테페약 언덕에 과달루페 성모님을 위한 두 번째 큰 성당을 다시 설립하여 축성식을 갖고 과달루페 성모님을 멕시코의 수호자로 선포하자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이 자취를 감추는 기적도 일어났다. 그 후 과달루페의 성모는 멕시코인들의 신앙 속에 깊이 자리하였고, 국가의 중요한 시기마다 당신 백성들을 돌보아 주었다고 신자들은 깊이 믿고 있다.
성 요한 디다쿠스는 성모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로 인정받기보다는 내적인 정화를 통해 하느님을 위한 기도와 가치가 충만한 삶을 살았다. 그는 1548년 5월 30일 생을 마감하면서 과달루페 성모님을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는 1990년 4월 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그해 5월 6일 멕시코시티에서 시복 승인 기념식이 열렸다. 이어서 그는 2002년 7월 31일 멕시코 과달루페의 동정 마리아 대성당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았다.
출처 : 가톨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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