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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09일


10월09일(녹) 연중 제28주일

Twenty-eighth Sunday in Ordinary Time


진정한 감사

오늘은 연중 제28주일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의 주제는 감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으로 부르시며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 사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이제 유다인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의 주체가 되며 오히려 이들이 하느님께 더 큰 찬미와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제1독서는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시리아의 군사령관으로 나아만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왕이 매우 아끼는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 장군은 나병 환자였습니다. 나아만은 하느님의 예언자가 이스라엘에 있음을 알고 병을 고치러 엘리사를 찾아 왔습니다. 엘리사 예언자는 사람을 보내어 요르단 강에 가서 그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전했습니다.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준 대로 요르단 강으로 내려가서 일곱 번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었습니다. 그러자 새 살이 돋아 그의 몸은 마치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해졌습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하느님 밖에는 온 세상에 신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 예언자에게로 돌아와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제2독서는 티모테오 2서의 말씀입니다. 군에 복무하는 사람은 자기를 뽑아준 상관에게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또 군에 복무하는 사람은 자기 살림살이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참된 주님의 제자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군인입니다. 주님의 참된 제자는 자기 살림살이에 얽매여서는 안 되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운동선수가 월계관을 얻으려면 규칙대로 경기를 해야 합니다. 주님의 참된 제자도 하느님의 법을 규칙대로 지켜야 합니다. 힘들여 일한 농부가 소출을 먼저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님의 참된 제자는 하느님의 집에서 쉬고 먹고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참된 제자는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고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입니다.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자비를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 환자들을 불쌍히 보시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들이 사제에게 가는 동안에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은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께 돌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러 돌아 온 사람은 이방인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아홉 사람은 치유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한 사람은 치유도 받고 구원도 받은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매일 매일 주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리는 사람입니다.




+ 2열왕기 5,14-17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주님께 신앙 고백을 하였다.>

해설) 엘리사 예언자는 시리아 장군 나아만에게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명했습니다.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으로 가서 일곱 번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었습니다. 그러자 나병에 걸린 그의 몸이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해졌습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하느님 밖에 참 하느님이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 무렵 시리아 사람 14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나병 환자인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5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이 종이 드리는 선물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16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모시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결코 선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였다. 그래도 나아만이 그것을 받아 달라고 거듭 청하였지만, 엘리사는 거절하였다. 17그러자 나아만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시다면,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이 종은 이제부터 주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 2nd Reading, 2 Kings 5:14-17

14 So he went down and immersed himself seven times in the Jordan, as Elisha had told him to do. And his flesh became clean once more like the flesh of a little child. 15 Returning to Elisha with his whole escort, he went in and, presenting himself, said, 'Now I know that there is no God anywhere on earth except in Israel. Now, please, accept a present from your servant.' 16 But Elisha replied, 'As Yahweh lives, whom I serve, I will accept nothing.' Naaman pressed him to accept, but he refused. 17 Then Naaman said, 'Since your answer is "No," allow your servant to be given as much earth as two mules may carry, since your servant will no longer make burnt offerings or sacrifice to any god except Yahweh.






+ 티모테오 2서 2,8-13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

해설)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고통을 당하고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바오로가 감옥에 갇혔다고 하느님의 말씀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오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항상 감사 기도를 드리며 그 모든 고통을 참고 이겨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8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9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10그러므로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11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12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13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 2nd Reading, 2 Timothy 2:8-13

8 Remember the gospel that I carry, 'Jesus Christ risen from the dead, sprung from the race of David'; 9 it is on account of this that I have to put up with suffering, even to being chained like a criminal. But God's message cannot be chained up. 10 So I persevere for the sake of those who are chosen, so that they, too, may obtain the salvation that is in Christ Jesus with eternal glory. 11 Here is a saying that you can rely on: If we have died with him, then we shall live with him. 12 If we persevere, then we shall reign with him. If we disown him, then he will disown us. 13 If we are faithless, he is faithful still, for he cannot disown his own self.



+ 루카 17,11-19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해설) 나병 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자비를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은 나병이 치유된 것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께 돌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아홉 사람은 치유를 받았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치유와 구원을 받았습니다.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Holy Gospel of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Luke 17:11-19

11 Now it happened that on the way to Jerusalem he was traveling in the borderlands of Samaria and Galilee. 12 As he entered one of the villages, ten men suffering from a virulent skin-disease came to meet him. They stood some way off 13 and called to him, 'Jesus! Master! Take pity on us.' 14 When he saw them he said, 'Go and show yourselves to the priests.' Now as they were going away they were cleansed. 15 Finding himself cured, one of them turned back praising God at the top of his voice 16 and threw himself prostrate at the feet of Jesus and thanked him. The man was a Samaritan. 17 This led Jesus to say, 'Were not all ten made clean? The other nine, where are they? 18 It seems that no one has come back to give praise to God, except this foreigner.' 19 And he said to the man, 'Stand up and go on your way. Your faith has saved you.'







주님께서는 많은 나병환자 중에서 이방인 나아만만을 고치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주님께 감사하며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치셨습니다. 그중에서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돌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홉 사람은 치유되었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느님께 자주 감사드리면 계속 감사할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2016년 10월 09일 일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https://youtu

.be/0KB8yY_hs60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 CCM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시다

+ 루카 17,11-19



1.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열 명을 치유해 주셨는데 왜 한 사람만이 주님께 감사드리려고 찾아왔습니까? 나머지 아홉 사람들은 왜 그대로 돌아갔습니까? 그들이 잊어버린 것은 무엇입니까? 치유 받은 사마리아 사람이 덤으로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2. 내가 주님께 간절히 청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살면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였지만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총은 무엇이 있습니까? 나도 치유된 나머지 아홉 나병환자처럼 주님께서 주신 선물에만 기뻐하다가 정작 감사함을 잊거나 외면한 채 살지는 않았습니까? 감사드리는 삶을 살 때 어떤 기쁨의 체험이 있습니까?




성녀 사라(Saint Sara)

축 일 : 10월 9일

신 분 : 구약인물

활동지역 : 팔레스티나, 이집트

활동년도 : 1420-1470년

같은이름 : 사라이



성조 아브라함(Abraham)은 하느님께 대한 특별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유대인, 그리스도인, 무슬림들에게 믿음의 모범 또는 믿음의 조상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셈의 후손이며 데라의 아들이고 사라의 남편이며, 이사악의 아버지로서 히브리 민족의 선조이다. 그리고 아들인 이스마엘을 통하여 퍼지게 된 다른 셈족들의 선조이기도 하다(창세 17,5; 25,10-18). 그의 삶에 관해서는 주로 창세기(11,26-25,10)에 소개되어 있고, 사도행전 7장 2-8절에 요약되어 있다.


구약성서에 보면 그의 이름은 ‘아브람’과 ‘아브라함’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언급되어 있다. 즉 창세기(11,26-17,4)와 일부 다른 성서의 구절(1역대 1,27; 느헤 9,7)에서는 아브람으로, 그리고 그밖의 부분에서는 모두 아브라함으로 표기되어 있다. ‘아브람’은 ‘아브’(아버지)와 ‘룸’(높다, 존귀하다)에서 파생된 ‘람’의 합성어로, ‘존귀하신 아버지’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나의) 아버지는 존귀하시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옳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어원론적 해석은 불투명하다.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면서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었다(창세 17,4-5). 여기에서 하느님은 약속 성취의 징표로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의미를 부여하신다. ‘아브’는 아버지를 의미하며 ‘라함’은 많은 민족을 의미하는데, 이 이름에 대한 성서의 해석은 유음 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대중적인 해석에 근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르에서 태어난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동생인 나홀과 하란, 아내인 사라와 조카 롯과 함께 하란으로 이주하였다(창세 11,26-32).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하란을 떠나 가나안 지역으로 이주하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 75세였다(12,1-4). 그가 세겜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약속의 땅의 중심인 그곳에서 야훼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그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였다(12,6-7). 그러자 그는 제단을 쌓아 야훼께 바친 뒤 그곳을 떠나 베델 동쪽에 있는 산악지대로 옮겨가, 서쪽으로는 베델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쳤다.


아브라함은 여기에서도 제단을 쌓고 야훼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였다. 그리고는 네겝 쪽으로 옮겨 갔다가 흉년이 들자 이를 피하여 이집트로 갔다(12,8-10). 그리고 다시 베델 쪽으로 와서(13,3) 롯이 분가를 한 다음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나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제단을 쌓아 야훼께 바쳤으며(13,18), 그 후 브엘세바에 정착하였다(20,1-2. 14-15; 21,22-34; 22,19). 그의 조카 롯이 아브라함으로부터 분가하여 소돔 근처에 살게 되었을 때 소돔 지역의 왕들과 북쪽 지역의 왕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때 롯은 북쪽 왕들에게 끌려가게 되었다(14장). 그러자 아브라함은 롯을 구하기 위하여 북쪽 왕들과 전쟁을 벌였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미 공인된 지도자로서 행동하였다. 그리고 이집트와 그랄과 브엘세바에서도 한 집단의 존경받는 지도자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그들과 대등한 관계에 있었다.


아브라함은 많은 목축과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13,20), 부하들도 많았다(14,14). 또 가나안족과 브리스족(12,6; 13,7)과 함께 어울려 살았으며, 블레셋 사람들(21,34)과도 어울려 살았고, 헷 사람들과 거래를 하기도 하였다(23장).


우르와 하란을 떠나기 전에 도시를 배경으로 살았던 아브라함은, 하란에 살고 있는 그의 친척들이 천막생활을 한 것과는 달리(24,10-11), 유랑하는 반유목민적인 삶을 살기 시작하였다(12,8-9; 13,18; 18,1). 그러나 그는 마므레, 브엘세바, 블레셋 지역에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머물렀으며(13,18; 18,1; 22,19; 21,3-4). 그곳 정착민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23,10. 18). 이 지역 왕들과도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였을 만큼 그는 상당한 세력을 가진 외국인 거주자였던 것 같다(15,13; 23,4).


<사진. 아브라함을 찾아 온 세 손님>

창세기 15장에는 아브라함이 가졌던 특별한 체험에 관해 언급되어 있다. 우선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이 되게 해줄 것을 약속하였는데(12,1-3), 이 약속은 13장 16절에서 다시 확인된다. 이 약속 실현의 첫 번째 과제는 그가 아들을 얻는 것이었다. 아직 그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고, 그의 마음속에는 이것이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었다. 그런데 환시 중에 하느님을 만났고(15,1), 여기에서 다시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실 것을 약속하였다(15,5-6). 아브라함은 이것을 믿었고, 이로써 “주님께서 그것을 정의로 인정해 주셨다”(15,6). 그리고 하느님은 그와 언약을 맺었다(15,7-21). 이집트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모든 땅을 그의 후손에게 줄 것을 약속하셨다(15,18). 여기에서 하느님은 희생제물 사이로 지나감으로써, 만일 그가 약속을 어기면 이 제물처럼 되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셨다(15,8-17). 즉 하느님은 자신의 존재를 걸고 약속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붙였는데, 아브라함의 자손이 200년 동안 다른 나라에서 종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15,13-16). 이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이것이 성취될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초월적인 신앙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깊은 감정적 움직임이 동반된 것이었다. 이 순간 그는 분명히 하느님의 약속을 완전히 믿었고, 이러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이러한 믿음도 훗날 흔들렸다.


그의 아내 사라는 아직 아이가 없었으므로 당시의 관습대로 남편에게 자기의 여종 하갈을 주어 아이를 갖게 하였다(16,1-16). 결국 아브라함과 이집트인 여종 하갈 사이에서 이스마엘이 태어났는데, 그때 그의 나이 86세였다(16,15-16).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느님은 다시 언약을 하셨고(창세 17장), 이때 그의 나이는 99세였다(17,1). 여기에서 하느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줄 것이며 후손을 번창하게 해줄 것을 약속하고(17,1-8), 이 새 언약의 징표로 할례를 지시하였다(17,9-14). 이 약속과 함께 부인 사라의 이름도 사래에서 사라로 바뀌었다. 이는 고대인들의 사고에 따르면 그의 운명이 바뀌는 것으로, 결국 사라가 하느님의 역사(役事)에서 다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 ^ 위 사진. 아브라함에게 하가르를 데려간 사라. v 아래사진. 이집트인 여종 하갈>


하느님의 약속은 사라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다시 확인되었다(18,1-19).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이사악이 태어났고, 이로써 약속 실현의 결정적인 조건이 갖추어졌다(21,1-7). 그러나 이사악을 매체로 아브라함의 신앙이 시험대 위에 놓이게 된다(22,1-14). 모리아 산에서 이사악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라는 지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증거하였다. 그의 아내 사라는 127년을 살고 죽어서(23,1) 헤브론 맞은편 막벨라 밭에 있는 동굴에 안장되는데(23,17-20), 이 땅은 헷 사람 에브론에게 산 땅이었다(23,3-16). 아브라함 역시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오자 엘리에젤에게 하란 지역에 사는 자신의 친척 중에서 이사악의 아내를 구해 주도록 하여 리브가를 며느리로 맞이하였다(24장). 아브라함이 늦은 나이에 크투라와 결혼하여 얻은 자식들은 드단과 미디안 부족의 조상이 되었고(25,1-6),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어 막벨라 동굴에 안장되었다(25,7-11).


신약성서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언급되고 있다(사도 13,26). 아브라함은 레위 제사장들의 선조로 언급되며(히브 7,5),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의 선조라고 선포된다(마태 1,1). 그러나 신약에서는 아브라함의 혈통과 관련하여 새로운 이해가 선포되었다.


세례자 요한과 사도 바오로는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하느님의 복을 받는 조건이라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중적 믿음을 부인하였다(마태 3,9; 로마 9,7).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자들이 새로이 선택된 민족, 왕다운 제관들, 거룩한 겨레, 하느님의 소유, 곧 새로운 이스라엘, 새로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이다(1베드 2,9-10).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다짐한 맹세(루가 1,73)와 약속하신 축복(갈라 3,14)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출처 : 가톨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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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_2016년 10월09일(녹) 연중 제28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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