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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폴리나리스

성 아폴리나리스 (Saint Apollinaris)

축 일 : 7월 20일

신 분 : 베드로의 제자, 주교, 순교자

활동 지역 : 라벤나(Ravenna)

활동 년도 : +1/2세기경? 같은 이름 : 아뽈리나리스


성 성인명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축일 7월 2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베드로의 제자,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라벤나(Ravenna) 활동연도 +1/2세기경? 같은이름 아뽈리나리스 성 아폴리나리스의 이름은 이탈리아의 라벤나 근교에 있는 산 아폴리나리스 인 클라세(San Apollinaris in Classe) 대성전의 묘비명 때문에 잘 알려져 있는데, 그에 따르면 그는 초대교회의 순교자 중 한 사람이었던 같다. 그러나 그가 언제 순교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고, 단지 1세기경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문헌은 라벤나의 주교였던 성 베드로 크리솔로구스(Petrus Chrysologus, 7월 30일)의 “설교집” 128장이다.


그는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지나 그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언제 주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7세기에 기록된 행전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해 라벤나의 초대주교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그는 라벤나의 초대주교로서 약 26년 동안 주교직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여러 기적을 행하였으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고 우상숭배자들에게 엄격했다고 한다. 박해자들로부터 혹독한 폭행을 당해 거의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난 뒤에도 계속해서 라벤나 근교에서 복음을 전하던 그는 다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7월 23일 순교하였다. 그의 축일은 현 로마 가톨릭 전례력에서 7월 20일(이전 7월 23일)로 변경하여 경축하고 있다.


가톨릭 홈에서

 

성 아폴리나리스 주교 순교자


2세기 말엽 주교는 이민족들에게 한없이 부요하신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알려진 것처럼 플라미니아 지방 라벤나 인근의 클라세 교회에서 사목하다가 체포되었고, 7월 23일 영예롭게 순교하여 주님 곁으로 갔다.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주교의 강론에서(Sermo 128, 1-3: CCL 24A, 789-791)

보십시오, 순교자는 다스리며 살아 있습니다.


복된 아폴리나리스는 순교의 영예로 교회를 빛냈다고 이 지방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아폴리나리스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여기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렇게 달릴 길을 다 달리고 신앙을 지킨 그를 신자들이 이 지방 최초의 복된 성인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증거자라는 말 때문에 그가 순교자보다 못하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순교자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날마다 수많은 일을 투쟁으로 여깁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1코린 15,31)라고 한 바오로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적들에 대한 영광스러운 승리를 자기 임금님께 자주 가져다 드릴 수 있는 그에게 한 번 죽는다는 것은 부족한 일입니다. 죽음보다도 신앙과 신심으로 순교자가 됩니다. 임금님 사랑을 위한 복종이 전장과 전투의 덕행에서 나오듯이, 오랫동안 달리기를 하고 그 경주를 마치는 것은 완전한 덕행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곧바로 죽지 않았다고 순교가 부정되지는 않았으며,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사실로 순교가 증명되었습니다. 교활한 적이 온갖 무기로 공격해 올 때 순교자는 힘껏 싸웠습니다. 그는 용감한 인도자의 자리를 포기하거나, 항구함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최고의 덕은, 필요하다면 주님을 위하여 현세의 삶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세상과 그 지배자를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순교자에게 서둘러 오시고, 순교자는 그 임금님께 서둘러 갔습니다. “깨어나소서. 어서 오시어 저를 보소서.”(시편 59[58],5)라고 한 예언에 따라, 바로 우리는 서둘렀다고 말한 것입니다. 거룩한 교회는 자신의 보호자를 곁에 모시려고 그리스도께 힘차게 달려갑니다. 또 정의의 승리자에게 화관을 씌워 주려고, 전쟁 때에는 스스로 전사의 모습을 보여 주려고 달려갑니다. 증거자는 자주 자기 피를 흘리며, 그 상처와 신앙으로 창조주를 증언하였습니다. 하늘은 그 육신을 받아들이면서 땅을 굽어보았습니다. 그는 승리하였지만, 자기 원의대로 순교를 늦추어가며, 그때까지는 연약했던 유아기의 교회를 보호하였습니다. 언제나 모든 것을 얻으려고만 하고, 이성의 힘보다 많은 눈물로 떼를 쓰는 그런 유아기를 저는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아이들의 눈물만큼이나 힘센 자들의 얼굴과 땀도 얻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몸은 여기에 마음은 저기에 흩어져 정신적 판단을 하기가 어려워지면, 그곳에서 모든 신심은 기울어져 내립니다.


무엇을 더 말하겠습니까? 어머니이신 거룩한 교회는 결코 자기 주교와 떨어지지 않도록 움직이고 행동하였습니다. 보십시오. 그는 살아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는 착한 목자로 자기 양 떼 가운데 서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시간을 앞서간 목자도 영으로는 결코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천상 거처로 앞서 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인의 몸은 우리 가운데에 있는 거처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마귀는 전멸당하고 박해자는 죽었습니다. 보십시오, 자기 임금님을 위하여 순교를 바랐던 성인이 다스리며 살아있습니다.

 

[교회의 빛나는 인물들] 성 아폴리나리스


성 아폴리나리스는 초대교회의 순교자 중 한 사람이었고,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난 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언제 순교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고, 단지 1세기경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문헌은 라벤나의 주교였던 성 베드로 크리솔로구스의 “설교집”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전해져 내려오는 행전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의 제자였다. 베드로 사도가 안티오키아에서 로마에 갈 때 그를 데리고 갔다가, 그를 라벤나의 주교로 임명하여 라벤나로 보냈다고 한다. 그는 라벤나의 초대주교로서 약 26년동안 주교직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여러 기적을 행하였으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고 우상 숭배자들에게 엄격했다고 한다. 박해자들로부터 혹독한 폭행을 당해 거의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난 뒤에도 계속해서 증거자로서 라벤나 근교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가 다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7월 23일 순교하였다.


교회는 그의 축일을 7월 20일로 변경하여 경축하고 있다. 아폴리나리스 성인을 공경하는 신심은 심마쿠스 교황 때 로마에도 전해져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초기 중세시대에 아폴리나리스 성인에 대한 공경이 랑고바르드족에게 널리 전파되어 정착되었다. 그의 유해는 856년에 예전에 테오데리히 황제의 궁전으로 사용되어 왔던 장소로 옮겨져 아폴리나리스 대성당이 생겨나게 되었다. 1000년경에는 성인에 대한 공경이 프랑스 디종에도, 그리고 독일 아헨과 쾰른에까지 전파되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성 아폴리나리스 주교는 이민족들에게 한없이 자비로우신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주교의 강론에서 아폴리나리스 성인에 대한 언급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십시오, 순교자는 다스리며 살아 있습니다. 복된 아폴리나리스는 순교의 영예로 교회를 빛냈다고 이 지방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아폴리나리스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하느님의 계명에 따라 여기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렇게 달릴 길을 다 달리고 신앙을 지킨 그를 신자들이 이 지방 최초의 복된 성인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순교자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날마다 수많은 일을 투쟁으로 여깁니다. ‘나는 날마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습니다’(1코린 15,31)라고 한 바오로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적들에 대한 영광스러운 승리를 자기 임금님께 자주 가져다 드릴 수 있는 그에게 한 번 죽는다는 것은 부족한 일입니다. 죽음보다도 신앙과 신심으로 순교자가 됩니다. 임금님 사랑을 위한 복종이 전장과 전투의 덕행에서 나오듯이, 오랫동안 달리기를 하고 그 경주를 마치는 것은 완전한 덕행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곧바로 죽지 않았다고 순교가 부정되지는 않았으며,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사실로 순교가 증명되었습니다. 교활한 적이 온갖 무기로 공격해 올 때 순교자는 힘껏 싸웠습니다. 그는 용감한 인도자의 자리를 포기하거나, 항구함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최고의 덕은 필요하다면 주님을 위하여 현세의 삶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세상과 그 지배자를 가볍게 여기고 무시하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순교자에게 서둘러 오시고, 순교자는 그 임금님께 서둘러 갔습니다. ‘깨어나소서. 어서 오시어 저를 보소서’(시편 59,5)라고 한 예언에 따라 바로 우리는 서둘렀다고 말한 것입니다. 거룩한 교회는 자신의 보호자를 곁에 모시려고 그리스도께 힘차게 달려갑니다. 또 정의의 승리자에게 화관을 씌워 주려고, 전쟁 때에는 스스로 전사의 모습을 보여 주려고 달려갑니다. 증거자는 자주 자기 피를 흘리며, 그 상처와 신앙으로 창조주를 증언하였습니다.”


[2016년 7월 3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청주주보 3면,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문화동 본당 주임)]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아폴리나리스 주교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78-79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8권 - '아폴리나리스, 라벤나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1년, 5752-57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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