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아의 성녀 리타(Saint Rita of Casia)
축 일 : 5월 22일
신 분 : 과부, 수녀
활동 지역 : 카시아(Cascia)
활동 년도 : 1380경-1457년
같은 이름 : 리다, 리따, 말가리따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고원 남단에 위치한 스폴레토(Spoleto) 부근 로카포레나(Roccaporena)에서 태어난 성녀 리타는 어려서부터 수도성소에 관심을 가졌지만 부모의 반대로 말미암아 12세의 어린 나이로 원하지 않았던 결혼을 하여 두 아이를 두었지만 18년간의 결혼생활은 불행하였다. 남편은 어린 아내를 학대했을 뿐만 아니라 결국은 어떤 사람과의 싸움 끝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 후 두 아들마저 죽게 되자 성녀 리타는 카시아의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에 세 번이나 입회 신청서를 냈지만 미혼이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강한 믿음과 인내는 결국 예외를 만들어 1413년 카시아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막달레나의 아우구스티누스회에 입회 허락을 받아내었다.
그녀는 지난날의 생활을 반성하며 자신처럼 불우한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철저한 고행과 기도생활에 전념하였다. 또한 그녀는 수차례나 환시를 체험하였고, 1441년에는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과 꼭 같은 상처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카시아의 수도원에서 선종한 후 그녀의 성덕과 기적에 대한 평판이 높아져 성녀의 유해를 중심으로 새 성당이 건축되었다. 성녀 리타는 1626년 7월 16일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00년 5월 24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결코 좌절하지 않고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불우한 사람들에게 봉사한 리타 성녀는 좌절하고 실망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홈
좌절하고 실망한 사람의 수호성인 리타
지구상에 이처럼 풍요로운 시절이 없었단다. 그래도 세상에는 좌절하고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매우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달에 만난 수호성인은 리타, 좌절하고 실망한 사람의 수호성인이다.
리타는 말가리타의 애칭이다. 1286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457년 임종하였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으나 리타의 18년간의 결혼생활은 온갖 고통과 굴욕의 시간이었다. 자신을 학대하던 남편을 오롯한 마음으로 회개의 길로 이끌었으나 남편은 평소에 원한을 품은 이와 싸우다 칼에 찔려 죽는다. 인간적인 복수심을 신앙으로 극복한 그는 남편을 살해한 이를 용서하고 아들의 견진 대부로 세운다.
남편이 죽은 지 1년이 안 되어 두 아들 역시 병으로 잃게 된 리타 성녀의 삶은 그야말로 좌절과 고통의 연속이었다.남편과 두 아들을 여윈 리타는 결혼 전 약속했던 봉헌생활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아우구스티노 수녀회를 찾았다. 그러나 과부는 입회한 전력이 없는지라 원장수녀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수호성인들이 그녀의 전구를 들어주어,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수녀원 안 뜰 지하 기도방에서 기도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를 보고 원장수녀는 주님 은총의 징표임을 확신하고 리타 성녀의 수도생활을 허락한다. 성녀는 수도생활에 전념하면서도 자신처럼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리타 성녀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보여준다. 하느님 품안에서라면 극복 못할 좌절이 어디 있겠는가! 1900년에 시성된 성녀의 축일은 5월 22일이다.
[경향잡지, 2007년 4월호]
성녀 리타(St. Rita, 5월 22일)
예수 가시관 고통마저 감내, 기도로 수도생활에 전념, 이마에 가시관 상처
1381~1457.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과부. 수녀. 좌절하고 실망한 이들의 수호성인.
성녀는 어렸을 적 수녀가 되길 원했지만 그의 부모는 12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딸을 강제로 혼인시켰습니다. 딸이 수도자로 고생하는 것보다 일찍 가정을 꾸려 안정된 삶을 살길 원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성녀의 남편은 경찰이었는데 성격이 급하고 난폭했습니다. 걸핏하면 사람들과 주먹다짐을 했고 집에서도 자주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럼에도 성녀는 한결같이 남편에게 순종하며 모든 상황을 기도로 이겨냈습니다. 남편이 잘못을 뉘우치고 착한 사람이 되길 하느님께 청하고 또 청했습니다.
하지만 성녀의 남편은 그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남편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성녀의 두 아들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한꺼번에 가족을 모두 잃은 성녀는 망연자실하고 맙니다.
성녀가 매달릴 데는 하느님밖에 없었습니다. 수녀가 꿈이었던 성녀는 아우구스티노 수녀회를 찾아가 입회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결혼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성녀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주님께 봉헌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드렸습니다.
결국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에서 밤새 기도하던 성녀는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수녀원 기도방에 있게 된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 기도방에서 성녀를 발견한 수녀들은 이를 하느님 뜻으로 받아들이며 성녀의 입회를 허락했습니다.
성녀는 단식과 고행, 기도로 수도생활에 전념했습니다. 성녀를 상징하는 것 중에 하나는 이마에 난 상처입니다. 주님 고난에 동참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성녀에게 하느님께서는 가시관을 쓴 예수님과 같은 상처를 성녀에게 내린 것입니다. 이 상처로 성녀는 죽을 때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야했습니다.
장미꽃도 성녀를 상징합니다. 성녀는 한겨울에 자신을 찾아온 친척에게 고향집에 핀 장미꽃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친척은 극도의 고행으로 몸이 쇠약해진 성녀가 정신까지 희미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속는 셈 치고 성녀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 때 성녀의 집에는 장미꽃이 무성하게 피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때문에 성녀 축일이 되면 일부 성당에서는 미사 때 장미를 봉헌하고 서로 나눕니다.
성녀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모든 역경을 극복한 성녀는 좌절하고 실망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1년 5월 22일, 박수정 기자]
카시아의 성녀 리타 수도자
15세기 움브리아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폭력적인 남자와 혼인하였지만, 그의 폭행을 인내로 견디어 내며 그를 하느님께 인도하였다. 그 뒤 배우자와 자녀들과 사별하고 성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원에 수도자로 들어가, 모든 이에게 인내와 통회의 모범을 탁월하게 보여 주었다. 그곳에서 1457년 이전에 선종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요한 복음 해설」에서
(Tract. 81, 4: CCL 36, 531-532)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무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한 15,7).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이가 그리스도와 어울리지 않는 것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구원자 안에 머무르는 이가 어찌 구원이 아닌 다른 것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당연히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기에 이런 것을 바라고, 아직 이 세상에 있기에 다른 것도 바랍니다. 이 세상에 머물러있기에 우리는 때대로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을 모르고서 청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무른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청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면 이루어 주시지 않습니다.
그분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무를 때 우리는 그분 안에 머무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청하면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청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물러 얻을 수 있는 것을 청하지 않고, 우리 안에 머무르는 그분 말씀이 지닌 것을 청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분 안에는 없고 그분 말씀이 머무르지 않는 육신의 욕정과 나약함에서 나온 것을 청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분의 말씀은 분명히,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바치는, 그분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의 말씀과 의미에서 우리의 청원이 벗어나지 않아야, 우리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그분의 약속을 사랑할 때에,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머무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이 기억 속에 있다 하더라도 삶 속에서 찾아볼 수 없다면,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 뿌리에서 생명을 끌어 올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려고 기억 속에 간직한 이들에 대한 성경 말씀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이가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도 무시하거나 비웃고 거스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아무렇게나 대하고 충실히 실천하지 않는 이러한 사람들 안에는 그 말씀이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그분 말씀이 축복이 아니라 반대 증언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 안에 있지만 그 안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마침내 그분 말씀에 붙잡혀 그 말씀으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4권 - '리다, 카시아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7년, 2299쪽.
■ 한종오 저, 김이중 그림, 성녀 리따, 서울(성황석두루가서원), 1990년. EndFrag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