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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지타(Saint Zita)

성녀 지타(Saint Zita)


축 일 : 4월 27일

신 분 : 동정녀, 하녀

활동 지역 : 이태리 우카

활동 년도 : 1218-1272년

같은 이름 : 시따, 시타, 지따, 치따, 치타


이탈리아 중북부 토스카나(Toscana) 지역의 루카(Lucca) 근처에 있는 몬사그라티(Monsagrati)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성녀 지타는 가난하지만 신심이 깊은 부모 밑에서 성장하였다. 특히 어머니의 보살핌과 신앙 교육으로 인해 그녀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았을 정도였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루카의 파티넬리(Fatinelli) 가문의 하녀가 된 그녀는 그곳에 평생 머물며 48년 동안 하녀로 일하였다.

그녀는 근면하고 열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극도의 고행을 실천한 관계로 주인 부부는 물론 동료들의 시기와 음모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노동이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일종의 보속행위라고 생각하고 감사와 순명의 정신으로 모두를 대해 끝내는 그들을 감동시켰다. 시간이 흐른 후 하인들의 책임자가 되고 주인 부부로부터도 많은 재산을 받았지만 그녀는 이를 자선사업을 위해 사용하였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과 감옥에 갇힌 범법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으며 많은 기적적인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성녀 지타는 신심이 매우 깊었고 기도하는 가운데 자주 탈혼 상태에 빠지곤 하였다. 탈혼에 빠져 있는 동안 그녀가 하던 빵 굽는 일 등을 천사가 와서 대신 해 주었다고 한다. 성녀 지타는 죽음이 가까웠을 때 고통 속에서 자신이 죽을 날짜를 알게 되었고, 임종일이 되자 자청하여 병자성사를 받았다. 그리고 1272년 4월 27일 55세로 루카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루카 지역을 중심으로 그녀를 공경하는 풍습이 빠르게 퍼져 나갔고, 결국 영국까지 전해졌다. 특히 가사를 담당하거나 집사를 담당하던 이들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성녀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몇 차례 성녀의 관을 공개할 때마다 시신이 썩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음이 확인되자 마침내 1696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2세(Innocentius XII)는 지타의 시성식을 거행하고 그녀에 대한 공경을 공식적으로 허용하였다.


그리고 1748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는 성녀의 이름을 로마 순교록에 기입하였다. 그녀는 1953년 9월 26일 하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래서 성녀 지타는 교회미술에서 주로 하인 복장을 하고 열쇠 꾸러미와 물 항아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영국에서 시타(Sitha) 또는 치타(Citha)로 불린다.


가톨릭 홈

 

하인들의 수호성인 지타

지타(Zita) 성녀는 1218년 이탈리아의 몬사그라티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난하지만 신심이 깊은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신앙은 그녀에게 큰 영향을 주어 그녀는 ‘기도하고 일하라.’는 어머니의 말을 성덕을 닦는 바탕으로 삼았다.


열두 살 때 루카의 파티넬리 가문의 하녀가 된 지타는 노동을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일종의 보속행위라고 여겼다. 그래서 자신이 하녀인 것에 오히려 감사를 드리고 순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여기며 살았다.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기도를 한 그녀는 가장 늦게 잠자리에 들며 기도하였다. 부지런하고 열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극도의 고행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동료들의 시기와 음모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결국 그들을 감동시켜 친구이자 조언자가 되었다.


그녀는 자기 몫으로 받은 음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감옥에 갇힌 범법자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수많은 기적을 행하였다. 기도하다 자주 탈혼에 빠지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을 천사가 해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임종에 가까워지자 자청하여 병자성사를 받았고 1272년 4월 27일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타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를 공경하는 풍습이 빠르게 퍼져나갔고, 성 프레디아노 성당에 안치된 그녀의 시신이 썩지 않고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1696년 인노첸시오 1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고, 1953년에는 하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지타 성녀는 하인 차림으로 열쇠 꾸러미와 물 항아리를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경향잡지, 200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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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지타(St. Zita, 4월 27일)


자신 낮추고 섬기는 자세로...48년간 하녀로 생활하며 어려운 이웃 도와

1212~1272.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하녀와 가사도우미의 수호성인.


이탈리아 토스카나 루카지방에서 태어난 성녀는 12살 때 지역 귀족 파티넬리 가문 하녀가 됐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지만 부모에게 배운 신심만큼은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어린 성녀에게 하녀일은 벅찼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다. 무슨 일이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느님 말씀에 따르는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 하녀와 귀족들은 아무리 힘든 일이 주어져도 기쁘게 일하는 성녀를 시기하고 질투했다. 어리고 하찮은 하녀가 자신들보다 행복해하며 사는 모습에 배가 아팠던 것이다. 성녀는 집안에서 왕따를 당하며 온갖 구박을 받았다. 귀족들은 이유 없이 성녀를 못살게 굴었고 다른 하녀들은 자신이 한 잘못을 성녀에게 뒤집어 씌우기도 했다.


하지만 성녀는 결코 화를 내거나 억울해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진실을 알고 계시고 자신을 보살펴 주실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녀는 매일 자신을 비우고 낮추며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을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하고 일했다.


결국 귀족들과 하인들은 성녀의 한결같은 태도에 감탄하며 성녀를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인은 성녀에게 모든 집안 일을 맡기고 성녀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줬다.성녀는 남몰래 어려운 이웃들을 돕곤 했는데, 빵을 구워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하녀들은 주인에게 성녀가 집안 일을 소홀히 하고 빵을 빼돌린다고 일러바쳤다. 주인이 이를 확인하러 주방에 들렀을 때 성녀를 대신해 천사들이 빵을 굽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주인은 성녀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원하는 만큼 빵을 베풀라고 허락했다.


성녀는 파티넬리 가문에서 48년을 일한 뒤 1272년 숨을 거두었다. 성녀가 세상을 떠나자 루카지방을 중심으로 성녀에 대한 공경이 널리 퍼졌다. 하녀들과 집사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성녀에게 기도하며 어려움을 이겨냈다. 또 성녀 전구로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1580년 신자들이 성녀 유해를 프레디아노성당으로 옮기려고 관을 열었을 때 유해는 전혀 부패하지 않았다고 한다. 교황 인노첸시오 12세는 1696년 그를 시성했다. 루카지방에서는 성녀 축일이 되면 빵을 구워 나눠먹으며 어려운 이웃을 도왔던 성녀를 기억하고 있다.


[평화신문, 2011년 4월 24일, 박수정 기자]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녀 지타 동정',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35-337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0권 - '지타',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4년, 7972-79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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