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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hn Baptist de la Salle)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hn Baptist de la Salle)


축 일 : 4월 7일

신 분 : 신부, 설립자, 교육자

활동 지역 :

활동 년도 : 1651-1719년

같은 이름 : 드라살, 밥띠스따, 밥티스타, 밥티스트,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annes Baptista de la Salle)은 1651년 4월 30일 랭스(Reims)에서 고대 왕가 귀족 가문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심 깊은 어머니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는 불과 11세 때에 삭발례를 받았고, 16세 때에 랭스 주교좌성당 참사회원이 되었으며, 소르본(Sorbonne) 대학교와 생 쉴피스(Saint Sulpice) 신학교 과정을 마치고 1678년 27세 때에 사제품을 받았다.


귀족 가문에서의 성장과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그는 루앙(Rouen)의 니엘(M. Nyel)이라는 신자와의 만남을 통해 가난한 소년들을 위한 자선 학교를 세우는 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먼저 그의 고향에 자선 학교를 세우고 차차 그 주변으로 확장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계획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 하느님이 마련한 소명임을 깨달은 그는 가정과 가족을 떠나 참사회원직마저 버리고 이 일에 전심으로 투신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넘겨주고 가난한 사람들의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었다. 그는 교사들을 훈련시키며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엄격한 자기 수련 생활을 따르도록 권유했는데, 이러한 그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에 헌신하는 수도 단체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결국 요한은 오랜 숙고 끝에 1684년 삼위일체 대축일에 12명의 학교 교사들과 함께 1년 동안 수련기를 가진 다음, '그리스도 교육 수도회'라는 이름의 독특한 수도복을 입는 수도회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교육을 위해 평신도들을 훈련시킬 생각으로 1686년에 최초의 정규 학교를 랭스에 설립하였으며 이어 또 하나를 파리(Paris)에 설립하였다. 1688년 랭스에서 파리로 수도회 본부를 옮긴 수도회는 전국적인 성격을 갖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하였다. 초기에 파리의 대주교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였지만, 그의 수도회는 날로 확장되어 지금은 17,000여명의 회원들이 세계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초로 교사 교육을 실시한 인물이며, 교사들에게 자부적인 사랑을 불어넣은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의 교육 철학은 1720년에 출판된 "학교들의 지침서"(The Conduct of Schools)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루앙에서 중류 사회 상인들의 자녀들을 위한 기숙사 학교를 설립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보다 모국어를 바탕으로 실용적인 과목을 제공해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루앙의 기숙사 학교는 18세기 수도회에 의해 성공적으로 설립된 다른 많은 학교들의 표준이 되었다. 그는 1719년 4월 7일 성 금요일에 루앙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95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모든 교사들의 주보성인으로 공포되었다


(가톨릭 홈)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 사제 기념


1651년 프랑스의 랭스에서 태어났다. 사제로 서품되어 주로 어린이 교육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학교 설립에 몸바쳤다. 몇 명의 동료들을 모아 수도 공동체를 형성하였으며, 이로 인해 그는 많은 곤경을 겪었다. 1719년 루앙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 사제의 [묵상집]에서(Meditatio 201)

하느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교회 안에 사도들과 예언자들과 교사들을 세우셨다고 사도 바울로가 말하는 바를 깊이 생각해 본다면, 여러분이 알고 있는 임무를 여러분에게 맡기신 분은 하느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 직책이 여러 가지이고 일의 결과도 여러 가지이지만, 그 각각의 선물 안에 공동 이익이라는 교회의 이익을 위해 작용하시는 성령은 같은 성령이시라고 말하며, 사도는 이 점을 다시 증언해 줍니다.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신앙의 정신이 스며들게 하도록 여러분에게 주어진 은혜는 여러분을 이 거룩한 봉사직에로 불러 주신 하느님의 위대한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을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보호에 맡겨진 어린이들로 하여금 여러분이 교사로서 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이 하느님의 봉사자들임을 발견할 수 있도록 진실한 사랑과 형제적 열성을 지니고 일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느님의 봉사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또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봉사자입니다. 이 생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과업에 더 열심히 헌신하도록 분발하게 할 것 입니다.


성 바울로가 복음을 선포하는 모든 이들을 그리스도의 봉사자들로 여겨야 하고, 또 그들은 그리스도의 지시를 잉크가 아닌 하느님의 영으로, 석판이 아닌 어린이 마음의 명판에 새겨야 한다고 권고할 때 바로 이것을 말해 줍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들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당신을 위해 살도록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도하는 학생들이 여러분의 열성에 찬 정성을 보고 감동을 받아, 마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그들을 권고하고 있는 것으로 그들이 느끼게끔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항상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일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대한 사랑도 보여 주어야 하며, 그 사랑을 행동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실상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열성을 다하여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이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어린이들을 하느님의 집을 건축하는 데 한 부분이 되어 거기 들어가 언젠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아무 흠도 구김살도 없이 영광스럽게 나아가 설 수 있도록 하십시오. 그래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총의 풍요함이 후세대에 드러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린이들이 당신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의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배울 은총을 주시고, 여러분에게 가르치고 교육시킬 은총을 주셨습니다.


 

수도회 창설자 - 라 살 신부



교육 혁신과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해 노력한 라살은 1950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교사들의 주보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수도회 주축으로 ‘교육 혁신’ 주도

'그리스도교 교육 수도회’ 창설… 교사들의 주보

가난한 이들의 ‘교육 기회’ 마련에 일생 바쳐



라살(세례자 요한, La Salle, Jean-Baptiste de, 1651~1719)은 교회 뿐만 아니라 서구의 교육사 안에서도 그 기여와 공헌이 빼어난 교육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오늘날 종종 ‘그리스도교 교육 수도회’(the Christian Brothers)로 불리우는 ‘그리스도교 교육 형제회’(the Institute of the Brothers of the Christian Schools)의 창설자로서 당대의 교육 풍토를 혁신한 개혁가이며 현대 교리교육의 아버지이다.


자선학교서 교육 전망 찾아


1651년 4월 30일 프랑스 랭스(Reims)에서 부유한 고대 왕가 귀족 가문의 장자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법조계에 몸을 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놀라운 신심을 보인 그는 11세때 사제 수업에 들어가 16세에 랭스 주교좌 성당 참사회원이 됐으며, 27세에 사제품을 받았다.


잘 생긴 외모에 풍요로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평생을 헌신해야 할 일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육 사업임을 깨닫는다. 비록 평생을 바쳐 일해야 하는 그 길은 험한 가시밭길이었지만 그는 조금도 의심 없이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당시 17세기 프랑스의 사회 질서는 여전히 과거의 관습에 매여 있었다. 교육과 관련해 모든 교육 혜택은 부유한 귀족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대다수 민중들을 위한 이상적인 교육에는 전혀 관심도 배려도 없었다. 라살은 이러한 극단적인 무관심을 개탄했고, 이를 타파해 가난한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하는 것은 평생의 과제였다. 라살이 교육에 몸담기 시작한 처음부터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노력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제품을 받은 뒤 첫 임지는 한 수녀회의 영적 지도 신부였고 그 수녀회가 운영하는 고아원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는 이 일을 통해 자신의 친척 중 하나이기도 한 부유한 여성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그에게 고아 소년들을 위한 시설을 세워줄 것을 요청했다.여기에 아리앙 니겔이라는 한 평신도 교사가 합류하게 되고 성공적으로 시설을 운영함에 따라 곧 교구내의 여러 곳에 유사한 시설들이 세워졌고 이곳들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이뤄졌다.


라살은 이러한 자선학교들에서 자신의 교육적 전망을 찾았지만, 문제는 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소집하고 받아들인 교사들과 직접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에게 엄격한 수련 생활을 따르도록 권유하고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들을 모색해나갔다. 보수도 없고 너무나 고되고 힘든 일 때문에 몇몇 교사들은 이 자리를 포기하고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더 좋은 젊은이들이 이 일을 자청해주었다.


최초의 정규 학교 설립


그러나 라살은 양질의 교사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육에 헌신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신앙 안에서 올바른 교육을 받도록 하는 목적을 위해서는 학교 설립보다도 오히려 그들에게 종교심을 키우고 올바른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는 일이 더 중요했고 이를 위해서 양질의 교사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다.


바로 이를 위해서 그는 수도 단체 설립을 통해서 평신도들을 훈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마침내 1684년 삼위일체 대축일을 기해 12명의 학교 교사들과 함께 1년 동안의 수련기를 거쳐 독특한 수도복의 수도회를 창립하게 된다. 바로 이 수도단체가 ‘그리스도교 교육 형제회’이다.


1686년에 최초의 정규 학교를 랭스에 설립한 그는 파리에 두 번째 학교를 세웠다. 1688년 파리로 수도회 본부를 옮긴 후 교구 소속을 거부했으며 6년 뒤에는 12명의 형제들이 라살의 단체에 거주하면서 또 다른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라살은 1700년부터 여러 곳에 학교 문을 열었고 채 몇 년이 안되어 남부 프랑스 지역으로까지 학교를 확장했다.


수도회는 파리에서는 최초의 정규 보통학교를 설립했고 나아가 성인들을 위한 수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교육을 확장했고 루앙에서는 중류 사회 상인들의 자녀들을 위한 기숙사 학교도 열었다. 1705년에 수도회는 다시 본부를 파리에서 루앙으로 옮겼는데, 이곳에서 그는 비행 청소년들을 위한 또 다른 기관을 설립한다.

라살의 교육 혁신은 당대의 여러 기득권자들로부터 반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얀센주의의 반대는 큰 장애요 골칫거리였다. 당시 프랑스에 널리 퍼져 적지 않은 주교와 성직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얀센주의는 그가 극복해야 할 큰 장애였다.


라살의 교육 개혁은 몇 가지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그의 교육 방법은 그의 회칙 안에 기초되어 있는데 1720년에 출판된 ‘학교들의 지침서’(The Conduct of Schools)에서 그는 이론이 아니라 엄격하게 실천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특별히 라틴어 대신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함으로써 선구자적인 면모를 돋보이게 했다


1719년 루앙에서 세상을 떠난 그는 1900년 교황 베네딕토 13세에 의해 시성됐고 비오 12세 교황은 1950년 그를 교사들의 주보성인으로 선포했다. 라살과 그의 수도회는 우리에게 교육의 가치를 새롭게 환기시킨다.

[가톨릭신문, 2006년 12월 10일, 박영호 기자 ]

 

성 요한 세례자 드 라살(St. Jean-Baptiste de La Salle, 4월 7일)



현대 교리교육의 아버지...모국어로 실용적 학문 가르치고 가톨릭 교사 양성 1651-1719.

프랑스 출생 및 선종. 사제.

그리스도교 교육 형제회 설립. 교사들의 수호성인.




성 요한 세례자 드 라 살 신부는 프랑스 교육 개혁가이자 현대 교리교육의 아버지로 불린다. 성인은 당시 부유한 귀족집안 자제들만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현실에 부당함을 느끼고 가난한 이들에게도 충분한 교육혜택이 주어질 수 있도록 평생을 헌신했다.


왕가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성인은 당대 최고 교육을 받고 자랐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당연하게 여길 법했지만 성인은 일찌감치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눈을 뜨고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꿨다. 하지만 이러한 성인의 생각은 귀족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7살에 사제품을 받은 성인은 수녀회가 운영하는 고아원 고아들을 돌보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 교육을 시작한다.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성금을 모금하며 고아원과 학교 건립에 힘썼다.


또 학생들을 가르칠 교사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스도교 정신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전해줄 수 있는 교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아예 수도단체를 설립하고 가톨릭 이념으로 무장한 교사들을 길러냈다. 이 수도회가 그리스도교 교육 형제회이다. 성인은 교사들과 프랑스 곳곳에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쳤다. 당시 교육 대부분이 어려운 라틴어로 진행됐던 것에 반대하며 모국어인 프랑스어로 실용적 학문을 가르쳐 교육계에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교육 방식은 중류층에도 퍼져 나갔고 점차 프랑스 학교교육의 한 틀로 자리 잡아갔다.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1900년 그를 성인품에 올렸고,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성인을 교사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평화신문, 2011년 4월 3일, 박수정 기자]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요한 밥티스타 드 라 살 사제',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48-251쪽.

■ 요셉 봐이스마이어 외 저, 전헌호 역, 교회 영성을 빛낸 수도회 창설자: 근세교회 - '요한 밥티스타 드 라 살과 그리스도적 교육 수도회', 서울(가톨릭출판사), 2002년, 141-162쪽.

■ 최익철 저, 우표로 보는 교회를 빛낸 분들 - '요한 드 라 살', 서울(으뜸사랑), 2014년, 216-219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3권 - '라살, 세례자 요한',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6년, 2026-2028쪽.

■ 헤수스 알바레스 고메스 저, 강운자 편역, 수도생활 역사 III - '그리스도교 교직회', 서울(성바오로), 2005년, 252-259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요한 드 라 살 사제', 서울(성바오로), 2002년, 89-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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