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7일 (자) 사순 제2주간 토요일
+ 미카 7,14-15.18-20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해설) 미카는 북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해 갈 무렵에 남 유다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미카는 전쟁보다 더 나쁜 인간의 탐욕과 불의의 상황을 하느님 분노의 원인으로 고발하였습니다. 미카는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과 맞섰습니다. 농촌 출신인 미카는 가난한 사람들의 예언자로서 가난한 이들을 희생시키는 상류 계층의 불의에 대해 고발하였습니다.
주님, 14 과수원 한가운데, 숲 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당신 소유의 양 떼를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 옛날처럼 바산과 길앗에서 그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15 당신께서 이집트 땅에서 나오실 때처럼, 저희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 주십시오. 18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19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20 먼 옛날 당신께서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을 성실히 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
(묵상) 미카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불의와 부패를 고발하면서도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청하였습니다. 못할 짓을 했어도 용서해 주시고 아무리 거스르는 짓을 했어도 눈감아 주시는 사랑 자체이신 주 하느님을 미카 예언자는 찬미하면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자비를 베푸시고 한결 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 루카 15, 1-3. 11ㄴ-32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해설) 잃었던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자주 어울려 식사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비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작은 아들과 같은 죄인들의 회개를 반기시기에 큰아들과 같은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도 주님의 이 기쁨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1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묵상) 아버지를 떠난 아들이 아버지께로 되돌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느님을 등진 인간이 하느님께로 되돌아서는 방향 전환이요 삶의 근본적인 전환입니다. 하느님을 등진 인간은 죽은 인간이요,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인간은 참 생명을 사는 인간입니다. 인간의 죄는 죽음으로 이끌지만, 주님 안에서의 회개는 새로운 삶에로 나아가게 합니다.
+ 영성체 후 묵상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라야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등지고 돌아서면 영적으로 황폐해지고 영혼은 시들어 버릴 것입니다. 아버지를 떠나 죽을 지경에까지 다다랐던 작은 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기쁘게 맞아들였습니다. 우리가 돌아서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반기실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다시 주님 안에서 생기를 얻고 참 생명을 살 것입니다.
2016년 02월 27일 토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그 길고 긴 방황의 늪을 지나
되찾은 아들의 비유
+ 루카 15, 1-3. 11ㄴ-32
1. 아버지는 작은 아들이 재산이 몫을 나누어 달라고 했을 때 그가 그것을 모두 탕진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왜 그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까? 아들은 재산을 모두 탕진하자 비로소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리고 그가 찾은 것은 무엇입니까?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는 왜 아무 조건 없이 그를 용서해줍니까? 아들이 돌아와 기쁜 아버지가 잔치를 열 때 큰아들은 돌아온 동생을 반갑게 맞기보다 왜 그를 못마땅해 하며 아버지께 따집니까?
2. 나는 하느님께 내 인생의 어떤 몫을 청하고 있습니까? 삶 안에서 나는 수없이 많은 은총을 받고 살면서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자주 내 몫을 챙기어 아버지 곁을 떠난 세속적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작은 아들처럼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작은 아들의 회심 과정을 묵상해보며 내가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 마음 안에 어떤 것이 나의 회심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까? 나는 나의 어두움을 큰 아들처럼 끝까지 부정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형제들에게 부어 주시는 은총이 못마땅합니까?
성 가브리엘 포센티(Saint Gabriel Possenti)
축 일 : 2월 27일
신 분 : 수사, 신학생
활동지역 : 모로발레(Morovalle)
활동연도 : 1838-1862년
같은이름 : 가별, 뽀센띠, 뽀센티
1831년 3월 1일 이탈리아의 아시시(Assisi)에서 법률가인 산테 포센티(Sante Possenti)의 13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난 성 가브리엘 포센티는 프란치스코(Francisc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4살 때에 어머니를 잃고 큰누나 밑에서 자랐으나 그 누나가 콜레라로 사망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부친이 스폴레토(Spoleto)의 세액 사정관으로 임명되자 그는 예수 고난회에 입회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곳의 예수회 대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매우 지성적이며 능력이 뛰어났고, 문학과 예술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깊은 신앙심과 성모님에 대한 신심,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높은 애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1856년 9월 21일 마체라타(Macerata) 부근의 모로발레(Morovalle)에서 예수 고난회에 입회하여 수련자가 되었다. 그리고 1857년 9월 22일 첫 서약을 하면서 그에게는 '성모 통고의 가브리엘'(Gabriel a Virgine Perdolente)이라는 수도명이 주어졌다. 그는 이때부터 사소한 일에서도 완덕을 얻으려는 특별한 노력으로 일생을 살았다. 그의 밝은 성품, 기도 정신,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 규칙 엄수, 육체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닮으려는 열망이 그의 모든 생활에서 빛을 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짧은 수도생활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덕을 닦을 수 있었다.
1861년에 소품들을 받은 그는 대품을 받을 준비를 계속하였지만 6년 동안의 수도생활로 체력이 소진되어, 1862년 2월 27일 이탈리아 테라모(Teramo) 지방의 이솔라 델 그란 사소(Isola del Gran Sasso)에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수도회가 이솔라 델 그란 사소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 성당에 안치되었으며, 지금까지 그곳에 남아 있다. 이후 그의 무덤에서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성녀 젬마 갈가니(Gemma Galgani, 4월 11일)가 그에게 기도함으로써 치유된 일도 있었다.
그는 1908년 5월 31일 로마의 바티칸 대성전에서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로부터 시복되었고, 1920년 3월 13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성되었고, 아브르초(Abruzzo) 지방의 수호성인이며, 청소년, 특히 수련자와 신학생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가톨릭 활동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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