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에지디오 마리아(성 요셉의) (Saint Aegidius Mary of Saint Joseph)
축 일 : 2월 7일
신 분 : 수사
활동 지역 : 이탈리아 나폴리 (Napoli, Italy)
활동 년도 : 1729-1812년
같은 이름 : 아이기디오, 아이기디우스, 에지디우스, 자일스, 지르, 질르
성 이탈리아 남동부 풀리아(Puglia)의 타란토(Taranto) 출신인 성 요셉(Josephus)의 성 에지디우스 마리아(Aegidius Maria, 또는 에지디오 마리아)는 끈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곤란한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25세 때에 그는 성 베드로 알칸타라(Petrus Alcantara)의 작은 형제회에 들어가 수도자가 되었다. 거기서 그는 문지기로 일생을 보내면서도 병자들에게 깊은 사랑을 전하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서 큰 성덕을 쌓았다. 그는 나폴리(Napoli) 시내를 돌며 탁발을 하였으며, 그의 손에는 항상 애긍으로 얻은 음식들이 들려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성 요셉에 대한 신심이 탁월하여 요셉 신심을 크게 전파하였다. 그는 사람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보였으나 하느님의 눈에는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질(Giles)로도 불린다. 그는 1888년 교황 레오 12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96년 6월 2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
성 요셉의 에지디오 마리아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가난한 사람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평수사로 잘 알려져 있는 에지디오(Aegidius Mary of St. Joseph Francis Anthony Postillo, 1729-1812)는 이탈리아 아풀리아(Apulia) 지역의 타란토(Taranto)에서 태어났으며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의 가족과 이웃들은 소박하면서도 신앙심이 깊은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며, 그는 고향에서 밧줄을 만드는 일을 하며 살았다. 1754년에 그는 나폴리(Napoli)에 있는 알칸타라(Alcantara)의 성 베드로 맨발의 작은 수도회(프란치스코회)에 수도자로 지원하였다. 그는 정식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기 어려워 수도회는 그를 평수사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에지디오’라는 새 이름을 주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로 서원한 에지디오는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그 지방의 신학교에서 일하는 짐꾼과 문지기 소임을 받았다. 에지디오는 자기가 맡은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연민의 정과 자비심은 그를 나폴리 시 변두리 지역과 나폴리 시 외곽에서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게 하였다. 신학교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사들은 에지디오의 경건한 신앙심과 성실한 봉사활동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얼마나 광범위한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값지고 고귀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에지디오 수사는 환자들을 돌보고 간호하는 데 탁월한 솜씨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있는 수도원으로 찾아왔고 그는 그런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돌보아 주었다. 그는 다친 사람들과 병자들로 인해 매일 매일을 분주하게 보냈고 그런 중에라도 틈만 나면, 나폴리 시 경계선 주변의 아주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을 위로하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자기 수도회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성인의 정신적인 유산, 곧 프란치스코 성인이 나병환자를 만났을 때 행했던 그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신의 도움을 청하는 나환자들을 찾아가 그들을 씻어 주고 정성껏 돌보아 주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 도움을 청하여도 이를 거절한 적이 없었다.
에지디오는 80세가 넘도록 깊은 연민의 정에서 우러나오는 봉사와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1812년 2월 7일 나폴리에서 에지디오가 기도하는 중에 숨을 거두었을 때, 수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에지디오의 장례식에는 어마어마한 군중이 몰려와 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하였다. 에지디오가 죽은 다음 즉시 그의 행적과 그가 추구한 정신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1888년 교황 레오 13세는 에지디오를 복자품에 올렸고 1996년 6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성인으로 시성하였다.
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에지디오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대표자로 대우받을 만한 영예를 지닌 분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겸손한 사람으로 그의 뛰어난 사랑과 성덕은 나폴리와 현대 교회에 영원히 기억될 모델입니다. 에지디오 수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성 요셉의 에지디오 마리아의 축일은 2월 7일이다.
[교회와 역사, 2012년 2월호, 번역 송영웅 바오로(봉명학원 재단이사)]
출처 : 가톨릭 홈